[클래식 ABC] 블록버스터를 저예산으로 옮기면?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11.13 03:19

실내악으로 편곡한 교향곡 음반들

교향곡을 실내악으로 즐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제 이런 시도는 음악사에서 무척 잦았습니다. 작곡가가 대(大)편성 오케스트라를 대상으로 썼던 교향곡을 조금 더 작은 체임버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편성으로 편곡한 곡들이 음반으로 속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6일 내한한 소프라노 케이트 로열(Royal)이 맨체스터 카메라타(지휘 더글라스 보이드)와 협연한 말러 교향곡 4번 음반(AVIE)이 대표적입니다. 당초 오케스트라를 생각하고 말러(Mahler)가 쓴 교향곡이지만, 이 음반에는 15명 안팎의 앙상블과 소프라노를 위한 편곡으로 담겨있습니다. 편성이든 곡의 길이든 '블록버스터 교향곡'을 즐겨 썼던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아기자기한 실내악과 가장 닮아있는 작품이 바로 교향곡 4번입니다.

간혹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화려한 볼거리에 휩쓸리다 보면 중요한 이야기 흐름을 놓치기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웅장하기 그지없는 교향곡의 사운드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곡의 전개와 흐름이 뒷전으로 밀려나기도 합니다. 교향곡을 실내악 버전으로 편곡한 작품을 듣고 있으면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 대신 수수한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는 묘미가 있습니다.
소프라노 케이트 로열이 협연한 말러 교향곡 4번 음반 /AVIE 제공(왼쪽), 리노스 앙상블이 연주한 브루크너교향곡 7번 /카프리치오 제공(오른쪽).
대형 편성을 즐겨 썼던 작곡가로 브루크너(Bruckner)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웅장한 금관악기군(群)을 통해 경건한 신앙심과 신성함을 곧잘 드러냈던 이 작곡가의 교향곡 중에도 9인조 실내악 편성으로 바꿔 놓은 음반이 있습니다. 리노스 앙상블이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음반(카프리치오)입니다. 우리에게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흘러나오던 2악장 아다지오의 비장한 현악 선율로 친숙하지요.

브루크너 특유의 장중함은 실내악 편성으로 연주되면서 어느덧 따뜻함과 소박함으로 자연스럽게 표정이 바뀌어 있습니다. 1시간을 넘나드는 작품 길이나 100명에 육박하는 대형 편성 때문에 혹시 우리는 작곡가가 당초 염두에 두고 있던 소박한 진심마저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요. 실내악 편성으로 듣는 교향곡에는 이런 반성의 묘미도 있습니다.

이들 교향곡을 실내악 편성으로 편곡한 작곡가는 에르빈 슈타인(Stein), 한스 아이슬러(Eisler), 칼 랑클(Rankl) 등 모두 쇤베르크의 제자들입니다. 쇤베르크는 1918년부터 빈에서 현대 음악을 소개하는 사적 연주 모임을 진행하면서 제자들에게 작품 편곡을 요청합니다. 당시 빈 음악계에서 냉대와 질시, 배척을 받던 쇤베르크로서는 자신이 꿈꾸던 음악을 서로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