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chosun] 정보석 "데뷔 초엔 나도 연기 지진아… 욕 실컷 먹고 컸죠"

  • 서일호 기자
  • 김소연 인턴기자·성신여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3년

입력 : 2008.11.07 16:30 | 수정 : 2008.11.09 10:19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30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TV사극 ‘대조영’ ‘신돈’ 등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을 주로 해온 배우 정보석(46)씨. 연기경력 22년째인데도 무대 밖의 모습은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요즘 연극 ‘아트’(11월 30일까지 서울 SM아트홀)를 공연 중인 정씨를 만나 연기관과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황색 가죽 재킷과 진한 청바지를 입고 극장에 나타났다. 인터뷰는 공연 전의 텅 빈 무대 위에서 진행됐다. 연극 ‘아트’는 남자 셋의 우정을 담은 작품이다. 미술 작품을 통해 그동안 쌓인 감정을 표출하고 풀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정씨가 맡은 역할은 지방대 공대 교수인 규태.



정씨는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연극 출연은 항상 부담이 된다고 한다. 더군다나 2004년에 출연했던 작품을 다시 한번 연기하는 만큼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년 대학로에서 함께 공연했던 멤버 그대로 출연한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때 연극으로 인연을 맺었고 이제는 친구가 됐죠. 그래서인지 친구 연기가 이전과는 달라진 걸 느껴요.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짚어내는 선도 다르고요. 이전에는 사건에 집중해서 그것을 증폭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이제는 세밀한 관계 속에서 어떤 식으로 감정을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죠.”



정씨는 연극 ‘아트’가 남자 셋에 대한 이야기지만 꼭 남자만을 위한 연극이 아님을 강조했다. “물론 남자들 특히 중년 남성분들이 보시면 매우 공감되고 재미있을 거예요.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고등학교 때 끈끈했던 친구들이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틈이 생기죠. 그 틈이 미술작품을 통해 해소되고 이전처럼 끈끈한 감정으로 하나가 되죠. 또 여성 관객들은 이전까지 좀처럼 겉으로 보여지지 않았던 남자들의 소심함에 크게 웃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아트’가 무대 위에서 끝나는 연극이 아니라고 했다. “관객들이 연극을 보고 나서 극장 밖으로 나가 맥주나 소주를 한잔 하면서 서로에게 쌓인 속내를 풀어야만 진정으로 끝이 나는 연극이에요. 그렇게 관객과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이처럼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가슴속에 항상 남아있는 연기에 대한 갈망도 정씨를 연극무대로 이끌었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풀샷, 클로즈업, 바스트샷 등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번에 걸쳐 나눠 찍기 때문에 감정을 반복적으로 끊어서 보여줘야 해요. 물론 완성품을 보는 재미는 있죠. 하지만 긴 호흡의 연기력보다는 순간순간의 집중력과 순발력으로 임할 때가 많아요.”



소파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소박한 무대에서 연기하지만 그는 더욱 큰 열정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연극은 일단 막이 오르면 아무도 제게 뭐라고 할 수 없어요. 무엇이든 제 맘대로 할 수 있죠. 물론 긴장되고 부담도 되죠. ‘아트’에서는 공연이 시작되면 저 혼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사를 읊어요. 그래서 아직도 떨리지만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더 연구하고 연습하죠. 그런 설렘을 갖고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정씨는 8년 전부터 자신이 터득한 연기 노하우를 수원여대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연기영상과가 처음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강의를 하고 있어요. 저 역시 데뷔 때 연기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학생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학교에서 편의를 봐주셔서 매주 수요일 하루만 강의를 하고 있죠.”


이제 그의 제자들은 연극, 뮤지컬,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SBS 주말드라마 ‘가문의 영광’에 나오는 윤정희씨도 제 제자예요. 한 친구는 시립가무단에서 주연을 맡고 있죠.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주연을 맡아 벌써 3년째래요. 다양한 곳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제자들을 보면 정말 뿌듯하죠.”



정씨가 연기와 강의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은 아내의 내조 때문이기도 하다. 매끼 새로운 반찬으로 그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화목한 정씨 가족의 집에는 ‘쥬얼리 하우스’라는 문패가 달려있다. “MBC 사극 ‘신돈’에 출연할 때 팬들이 지어준 별명이 ‘쥬얼리 정’이었어요. 이사하면서 문패를 달 때 아내가 그 별명을 생각해 내고는 ‘쥬얼리 하우스’라고 붙였죠.”



슬하에 자녀는 2남. 그는 아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지원할 뿐만 아니라 연애상담까지 해준다. “원래 제 꿈은 야구선수였어요. 부상을 당한 이후 연기를 시작하려 했을 때 부모님께 엄청 혼났어요. 그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도덕 선생님께서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성공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효도’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먼저 사람이 되고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제일이니까요.”



정씨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고등학교 시절 허리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둬야 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한동안은 공을 잡고 싶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연예인 야구단 ‘조마조마’에서 투수로 다시 활동하고 있다. ‘조마조마’는 만화가 박광수씨를 주축으로 박상원, 오만석, 유준상, 이문세 등 연예인 30여명과 일반인 30여명이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은 ‘한’ ‘플레이보이스’ ‘재미삼아’ 등 연예인 야구단이 늘어나서 함께 경기를 하죠. 오랜만에 모여서 운동하며 친목도 쌓고 그 동안 못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아요.”

야구만 알았던 학생이 연기를 하겠다고 맘먹은 것은 병상에서 읽었던 ‘셰익스피어 전집’ 때문이었다고 한다. “항상 앞부분만 읽다가 덮었는데 찬찬히 끝까지 읽어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직접 연기를 해보고도 싶어졌죠. 그래서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연기에 대한 기초가 없어서 처음엔 이론을 공부했고 졸업 직전까지 계속 연출만 했어요. ”


그러던 중 졸업작품을 준비하던 한 선배에게 부탁을 해서 처음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엄청 욕을 먹었어요. 연기를 너무 못했거든요.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상태에서 했으니까요. 선배들과 교수님들께 ‘다신 연기하지 마라’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비판이 오히려 정씨가 연기를 더욱 열심히 하게 만들어준 약이 됐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더 노력했죠. 1986년 데뷔작이었던 KBS의 6·25특집극 ‘백마고지’를 찍을 때도 연기 못한다고 싫은 소리를 들었지만 계속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정씨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연기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볼링장, 카페, 참치집 등 연기 외에 사업 외도를 참 많이 해봤어요. 그렇지만 결국 가장 좋은 것은 배우더라고요. 그리고 강의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워요. 그래서 이렇게 연기와 강의를 병행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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