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예술의전당, 무대는 밟아도 기준은 밟지 말아야…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11.06 03:07

최근 예술의전당 공연 대관 탈락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가수 인순이. /조선일보DB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은 클래식 연주자라면 누구나 서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입니다. 그런 카네기홀에서는 매년 주요 연주자를 선정해서 수차례에 걸쳐 무대를 마련해주고, 그 연주자의 음악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퍼스펙티브(perspective)' 시리즈를 엽니다. 올 시즌에는 명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Barenboim) 등이 선정됐습니다.

대부분 클래식 연주자들이 이 시리즈에 서지만, 대중 가수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마이크를 통해 수없이 다채로운 소리를 빚어내는 '보컬 아티스트' 바비 맥퍼린(McFerrin)이 초청받았습니다. 히트곡 〈걱정 말고 행복하세요(Don't Worry Be Happy)〉로 우리에게도 친숙하지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대표적인 음악당은 만화 제작자 월트 디즈니의 이름을 딴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입니다. 지난달 내한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상주 음악당으로 쓰이지만, '영화의 도시'답게 재즈 밴드나 팝 가수 스팅(Sting)의 공연도 이따금씩 열립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예술의전당 제공
최근 가수 인순이예술의전당 대관 신청 탈락에 항의하는 기자 회견을 열었습니다. 그곳이 클래식 음악 전용 공간으로 쓰이면서, 대중 음악에 지나치게 높은 장벽을 쌓고 있다는 항변이었지요. 1999년부터 연말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던 가수 조용필의 인기 공연도 2006년부터 슬그머니 사라졌으니 대중 음악계에서 반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바비 맥퍼린은 카네기홀에 설 때면 12명의 보컬리스트로 구성된 '보이스트라(Voicetra)'를 꾸려서 재즈부터 오페라 아리아까지 다양한 곡을 선사합니다. 첼리스트 요요 마,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와 협연 무대를 마련하기도 하지요. 팝 가수 스팅도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에서는 기존 히트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16세기 영국 작곡가 존 다울랜드(Dowland)의 노래를 류트(lute)의 반주에 맞춰 나지막하게 읊조립니다. '클래식 음악이냐 대중 음악이냐' 하는 장르 구분보다는, '연주장의 특성과 걸맞은가' 하는 공연 내용과 성격이 더욱 중요한 것이지요.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이나 리사이틀 홀의 경우, 평균 대관 신청 경쟁률은 2~3대1입니다. 봄·가을처럼 연주회가 몰리는 계절에는 10대1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른바 클래식 연주자라고 해도 좀처럼 대관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예술의전당 무대를 밟고 싶다"는 그 가수의 꿈이 소중한 것처럼, 그날 무대를 밟게 될 연주자를 선정하는 일 또한 공연장 측의 의무이자 권한입니다. 차별과 배제보다는 공존과 상생으로 논의가 한층 진전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