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동네의 흉물에서 보물로

  • 김미리 기자

입력 : 2008.10.31 03:33 | 수정 : 2008.10.31 10:56

테마를 입히고 상상을 심고… 가족 문화공간이 된 놀이터

요즘 놀이터 참 많이 달라졌다. 모래가 풀풀 날리는 공터에 미끄럼틀, 그네 몇 개 달랑 있고, 밤이면 불량 청소년의 아지트로 변하는 옛날 놀이터가 아니다. 디자인을 입힌 놀이기구, 유기적인 동선을 고려한 공간 디자인이 적용되면서 테마파크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 놀이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놀이터=어린이 놀이 공간'이라는 등식을 깨고 '문화공간', '지역 커뮤니티 무대'로 놀이터를 새롭게 보려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놀이터는 문화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상상 어린이 공원' 프로젝트는 우리 놀이터 문화를 바꿀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 받는다. 876억원을 투입해 2010년까지 300개의 노후한 놀이터에 디자인을 불어넣겠다는 프로젝트.

시에서 놀이터 디자인을 공모한 것 자체가 주목할 부분이다. 지난 4월 실시한 현상공모에서 당선된 작품들은 놀이터의 개념을 뒤집는 파격적인 것들이다. 예컨대 은평구 '대조공원'의 테마는 '걸리버의 저녁 초대'. 아이들이 동화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난쟁이가 돼 탐험한다는 가정이다. 계단은 대형 포크, 미끄럼틀은 대형 수저이고, 암벽타기 코스는 대형 프라이팬 형태다.
상상 어린이 공원 프로젝트의 핵심은 그동안 놀이터의 수동적인 수요자였던 아이들이 디자인의 주체가 됐다는 점. 서울시는 지난 6~7월 서울시내 100개 초등학교 학생과 놀이터 디자인 담당자, 주민들이 함께 하는 '상상 어린이 공원 디자인 워크숍'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놀이터 형태를 디자이너에게 제안했다. 수요자들인 아이들과 시민이 참여하는 '쌍방향 놀이터'인 셈이다. 서울시 푸른도시국 장상규 팀장은 "인구 밀도가 높고 녹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에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대안 공간으로 놀이터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입 베물고 싶은 깜찍한 사과 모양 식수대. 상상 어린이 공원에 들어갈 작품이다(왼쪽), 모래내 공원에 설치된 코끼리 모양 미끄럼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양과 색깔을 입혔다(오른쪽). /서울시 제공
놀이기구, 궁전형 벗고 상상을 입다

동네 놀이터도 변모하고 있다. 그간 동네 놀이터를 점거해온 아이템은 90년대부터 보급된 '궁전형 놀이기구'. 동화 속 궁전이나 성(城)모양 지붕이 달린 미끄럼틀에 구름다리가 연결되고 그 옆으로 그네 한두 개가 매달려 있는 형태. 모든 놀이기구가 한데 조합돼 있어 '조합형 놀이대'라고 불린다.

최근 이 전형적인 놀이터 스타일을 벗어난 파격적인 놀이터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서울 돈암동 힐스테이트에는 '거꾸로 놀이터'가 있다. 거꾸로 된 집에 컵 모양 의자, 자동차가 움직이는 그네가 매달려 있다. 관악구 '모래내 어린이공원'에는 하늘색빛 코끼리 모양 놀이기구가 있고, 인천 드림파크 금호어울림에는 북극곰 모양으로 생긴 '북극성 놀이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물'을 이용한 놀이기구 등장도 특징. 새로 들어선 반포 자이에는 작은 워터 파크를 연상시키는 '미니 카약장'이 놀이터다. 길동 '성심 어린이공원'에는 배 모양 놀이시설이 있다. 둘 다 여름에는 물을 채워 물놀이 공간으로 쓸 수 있고, 겨울에는 물을 빼 일반 놀이터처럼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놀이터.

네모 반듯한 놀이터도 사라지는 추세. 아파트 단지가 반듯한 바둑판 형태에서 유기적인 형태로 변하면서, 놀이터도 박스형에서 원형·비정형으로 바뀌고 있다. 바닥에 까는 폭신한 고무칩도 격자형 패턴에서 곡선으로 바뀌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어른도 함께 노는 놀이터

요즘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화두는 '가족 쉼터'. 삼성건설은 놀이터에 '플레이 파크(Play park)'라는 개념을 도입, 놀이와 휴게, 여가가 한데 합쳐진 복합공간을 만들고 있다. 과천 래미안슈르의 플레이 파크는 어른들이 산책할 수 있는 산책길 '스카이 워커'가 아이들의 미끄럼틀에 연결돼 있다. 2~3년간 '숲 속 놀이터'로 자연친화적인 테마를 강조했던 GS건설도 요즘은 '가족 놀이터'로 콘셉트를 이동했다. 대구 상인자이는 생태 계류를 만들어 부모와 아이가 함께 쉬게 만들었고, 반포자이의 미니 카약장도 가족이 함께 하는 워터 파크 개념에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