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정이 그리는 다양한 색깔을 보세요"

  • 김수혜 기자

입력 : 2008.10.28 03:03

다문화 가정 그림 응모하세요
30점 뽑아 전시회 열어드려요

서울 번동에 사는 최순길(45)·레오노라 이팍손(37)씨 부부의 집은 어린아이 다섯이 재잘거리는 소리로 아침부터 밤중까지 소란스럽다. 민정(7), 민지(5), 슬기(4), 민선(2) 등 네 자매에다 생후 15일 된 막내아들 우완이까지 돌보느라 부부는 온종일 정신이 없다.

아빠 최씨는 딸들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엄마 닮아서 애들이 눈이 커요" 하고 싱글거렸다. "친구들 중엔 일찍 장가가서 며느리 본 녀석도 있어요. 언제 키우나 막막하다가도, 요놈들 재롱떠는 걸 보면 '늦게라도 낳기를 잘했다. 애들 없었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싶어요."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의 소박한 가족 그림을 뽑아서 전시하는 행사가 열린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소장 원형규)는 11월 26일까지 전국의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가족 그림을 우편접수 받기로 했다. 한국큐레이터협회(회장 박래경) 소속 전문가들이 따뜻한 사랑이 특히 잘 드러난 작품 30점을 뽑을 계획이다. 입상작은 12월 4~19일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청사에 전시된다.
26일 오전 최순길씨 가족이 서울 번동 자택에서 오순도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왼쪽부터 셋째 슬기, 아빠 최순길씨, 넷째 민선이, 엄마 레오노라씨와 막내 우완이, 둘째 민지, 맏이 민정이. /이준헌 객원기자

이 행사는 '미술'과 '가족 사랑'을 한데 엮어 따뜻한 사회를 일구자는 조선일보 창간 88주년 기념 《그림이 있는 집》 캠페인의 일환이다. 최순길씨네 5남매도 그림을 낼 계획이다. 네 자매가 네모난 밥상 위에 머리를 맞대고 아빠 엄마 모습을 그리는 동안, 최씨 부부는 막내아들을 품에 안은 채 딸들 그림을 어깨 너머로 들여다봤다.

최씨는 원래 강원도 영월에서 나고 자랐다. 7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나 일찍부터 막장에서 탄을 캤다. 1990년, 폐광으로 실직하고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최씨는 보일러 기사로 일하며 노총각이 됐다. 만 서른여섯 되던 해, 그는 주위에서 권하는 대로 필리핀 마닐라에 가서 레오노라씨와 선을 봤다.

이듬해 12월, 레오노라씨가 입국했다. 최씨가 마중 나갔다. "추운 날이었어요. 집사람이 혼자 가방을 들고 서 있었어요. 그게 예쁘고, 안쓰럽고…. '잘해주자' 생각했죠. 집사람도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컸대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딸 민정이는 요즘 능숙한 글씨로 곧잘 부모에게 편지를 쓴다. "아빠, 돈 많이 벌어서 떡볶이 사주세요" "엄마, 동생 잘 돌볼게요" 같은 내용이다. 최씨는 잠깐 침묵하더니 "잘 키우고 싶은데 힘드네요" 했다. 그는 지난해 시신경이 상해 시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침침한 눈으로 전기설비 관리에 대한 수험서를 읽고 있었다. "눈 때문에 현장 일은 더 못할 것 같아요.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관리직으로 몇 년은 더 일하고 싶어요."

낙천적인 부인이 순박하게 웃었다. 그녀는 막내아들을 어르며 서툰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이 직장 다니면서 늦게 올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 온종일 같이 있잖아. 애들도 있고."

▶그림 보내실 곳: 158―070 서울 양천구 신정동 319-2번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관리과, (02)2650-6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