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10.27 09:39
"상을 받아서 좋긴 한데…, 이 부담스런 기분은 뭘까요?"
화사한 웃음이 매력인 뮤지컬배우 김소현(31). 그녀에게 올해는 영원히 잊지못할 한 해로 기억될 게 분명하다. 지난 20일 열린 제14회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별 중의 별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뮤지컬배우로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시상자가 발표를 하는데 '마~'라고 시작하는 거예요(그녀는 '마이 페어 레이디'로 노미네이트됐다). 세상에, 마, 마라니…, 그렇다면 난가? 어쩌지 소감도 준비 못했는데…, 순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더니 머리가 멍해지더라구요."
아직도 감동의 여진이 남아있는 목소리. 김소현은 얼떨결에 무대에 올라 "아빠가 뮤지컬 그만하고 이제 시집가라고 했는데 상도 받았으니 좀 더 해야겠다"는 '솔직 소박한' 소감을 말해 객석에 웃음바다를 연출했다.
"아직 배우 8년차 잖아요. 욕심같으면 좀더 영글어서 받았으면 했는데 너무 빨리 받은 것 같아요. 한 2년 뒤 쯤 받았으면 딱 좋았을텐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지만 세상일이 다 자기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더구나 상은 운(運)이 따라야 한다. 올해 양보하고 2년 뒤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여우주연상 수상에 앞서 뮤지컬 배우의 길도 그녀에겐 드라마틱하게 열렸다. 2001년 봄, 김소현은 오페라가수가 꿈인 서울대 성악과 대학원생이었다. 유럽 무대 데뷔를 목표로 일본에서 연수를 하다 이탈리아로 넘어가기 위해 집에 잠시 들렀는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 공고를 들었다.
"그때까지 솔직히 뮤지컬을 단 한 편도 못봤어요. 전혀 몰랐죠. 그런데 제목에 오페라도 있고 클래식한 뮤지컬이라고 하더라구요. 가벼운 마음으로 테스트를 받았는데 그만 주인공 크리스틴 역에 덜컥 붙었죠."
뮤지컬 배우의 길은 이렇게 우연찮게 시작됐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의 이끌림이었다.
엄마 - 동생도 성악가 타고난 강한 성대 '강점'
모든 여배우들이 선망하는 크리스틴으로 커리어를 시작해서인지 탄탄대로를 달렸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선 마리아, '그리스'에선 샌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선 로테 등 예쁜 여주인공만 독식했다. 그러다보니 '공주과'라는 별명 아닌 별명을 얻기도 했다.
나름 화가 났다. 거기다 '성악과 출신들은 연기가 약하다'는 뮤지컬계의 선입견도 마음에 걸렸다. 정면돌파 하자고 굳게 마음을 다졌다.
소극장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에도 나섰고, 연극 '미친 키스'도 자청했다. 지난해엔 TV 드라마 '왕과 나'에서 악녀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운이 좋아 스타덤에 올랐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연기의 기술은 지금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배우로서 활동한 기간은 길지 않지만 굉장히 낯익은 느낌을 주는 이유도 이렇게 주역을 많이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김소현의 강점은 타고난 성대다. 스스로 "딴 건 몰라도 10시간, 20시간 노래 해도 목청이 끄덕없다"며 활짝 웃는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속일 수 없는 핏줄의 힘이다.
어머니 장경애씨는 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오페라 가수다. 여동생(소은)도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해 현재 독일 유학 중이다. 어머니는 메조소프라노, 김소현은 소프라노, 동생은 알토로 음역대는 다르지만 목청이 좋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 남동생마저도 서울대병원의 저명한 의사인 아버지(김성권씨)를 따라 현재 레지던트 수업 중이지만 노래 실력은 수준급이라고 한다.
털털한 성격에 '소팔' 하도 자주 넘어져 '덤벙이'
사실 김소현은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했지만 전공은 바이올린이었다. 하지만 고교입시를 앞두고 팔을 다쳐 할 수 없이 일반고에 진학했는데 고3 초에 어머니가 부르더니 '성악은 어떠냐'며 라보엠 CD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뒤를 이어 성악의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리라. 그때 그 CD를 들으면서 무엇에 끌린 듯 자연스럽게 성악으로 방향을 선회했으니, 재능은 물론 진로에도 어머니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뮤지컬 배우가 처음 됐을 때 집안에서는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오페라를 하라고 시켰더니 웬 뮤지컬이냐는 반응. 하지만 부모님이 직접 공연을 보고 나서는 열심히 하라는 격려 모드로 바뀌었다.
김소현은 독립심이 강한 성격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뱄다. 대학 때부터 용돈을 받지 않고 '알바'로 버텨왔다. 이렇게 강한 면이 있지만 한편으론 "A형에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배우가 되고 나서 많이 바뀌었다. 술도 배웠고, 성격도 활달해졌다. '오페라의 유령'을 할 때 서울대 성악과 선배이기도 한 류정한이 '소팔'이란 별명을 지어줬는데, 이제는 그 이름에 걸맞게 털털한 성격으로 변했다. '마이 페어 레이디'를 할 때는 대선배인 윤복희로부터 '덤벙이'란 말도 들었다. 하도 자주 넘어져서란다.
취미가 유별나다. PC방에서 게임하기다. 특히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한다. '마이 페어 레이디'를 연습할 때에도 시간이 날 때면 동료들과 PC방에 가서 5~6시간씩 컵라면 먹어가며 게임에 몰두하기도 했다. 실력을 물어보니 "남자들과 붙어도 잘 안 져요"라고 하니 수준급인 모양이다.
"저에게 연기는,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지만 마약같아요. 매번 무대에 설 때면 힘들어서 때려치고 싶지만, 일주일만 쉬면 몸이 근질거려 살 수가 없어요.(웃음)"
뮤지컬배우가 삶이자 운명의 길이 된 것이다.
"처음엔 무식이 용기라고 덤볐지만 연기를 하면 할수록 무대에 선다는 게 힘들어요. 더구나 앞으로가 더 고민이에요. 상도 받았으니 책임감도 커졌고…."
그녀의 말대로 여우주연상이 조금 일찍 그녀에게 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하늘의 뜻이다. 그녀의 말대로 진실과 노력 두 단어만 가슴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면 좋은 채찍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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