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만 사라지지 않아"

  • 더블린=박돈규 기자

입력 : 2008.10.23 06:32

'베케트의 친구' 게이트 극장 콜건 감독

아일랜드 게이트 극장은 1991년 베케트의 희곡 19편 전작을 올려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영국 바비칸센터, 미국 링컨센터에도 초청된 이 야심찬 프로그램은 1983년부터 이 극장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마이클 콜건(Colgan·58·사진)이 지휘했다. 20일 더블린에서 만난 콜건은 "《고도를 기다리며》에 머물러 있는 베케트에 대한 인지도를 넓히고 싶었다"며 "베케트는 20세기 연극을 전진시킨 중요한 극작가"라고 말했다.

콜건은 1985년 프랑스에서 베케트를 처음 만났고 1989년 그가 죽기까지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콜건이 기억하는 베케트는 푸른 눈에 수줍음 많은 구식 노인이었다. 베케트가 가장 좋아한 자기 작품은 《게임의 끝》(Endgame)이라고 했다. 콜건은 "베케트다운 유머가 풍부한 작품이기 때문"이라며 일화 한 토막을 들려줬다. 파리에서 베케트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 헤어질 때 그가 "잘 가게. 내가 혹 넘어져도 일으킬 생각은 말아. 죽지만 사라지지는 않아(Dead but not gone)"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오콘 오콘(Ochon Ochon)…"이라고 곡(哭)을 하는데 '죽지만 사라지진 않는다'는 뜻이다.

베케트가 바라본 세상은 황량했다. 그의 연극은 기승전결 구조나 메시지에 익숙했던 1950~60년대 관객에겐 난수표 같았다. 그러나 이젠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나올 때 "고도가 누구지?"라고 묻는 관객은 거의 없다. 콜건은 "작품은 그대로인데 관객이 변했다. 베케트의 희극성을 알아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