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올림픽공원은 이 청년 덕에 즐거웠다

  • 한현우 기자

입력 : 2008.10.22 03:12 | 수정 : 2008.10.22 06:18

첫 내한 공연 '올드맨 리버'

지난 17~19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에 선 아티스트는 국내외 총 62개 팀이나 됐다. 사흘간 총 3만명이나 몰린 이 축제는 올해 2회째인데도 큰 성공을 거뒀다. 토요일인 18일 티켓은 매진. 포크와 팝, 모던록 위주로 음악 장르를 특화한 전략이 젊은 여성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데 주효했다는 평가다.

출연진 중 호주의 1인 프로젝트 '올드맨 리버(Old Man River)'가 돋보였던 건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무명에 가까운 올드맨 리버는 대표곡 '라(La)'가 국내 CF 음악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그가 무대에서 이 쉽고 흥겨운 노래를 부를 때 수많은 관객들이 온갖 동물 울음 소리를 내며 환호했다(음반에서도 노래 말미에 동물 소리가 나온다).

20일 만난 그는 "나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국에서 제가 유명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관객 반응이 싸늘하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열광적이고 대단했어요. 공연 끝난 뒤 '한국에 꼭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올드맨 리버는“공연을 한 뒤‘한국에 꼭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호주에서 태어난 올드맨 리버의 본명은 오하드 레인(Rein·29). 이스라엘계 호주인으로 이스라엘에서 군 복무를 하고 인도와 유럽, 미국을 여행했다. 미시시피강의 별명이기도 한 '올드맨 리버'는 뮤지컬 '쇼 보트(Show Boat)'에서 인상 깊게 들었던 노래 제목. 그는 "노래 가사 중 '강은 쉼 없이 흐르네(He just keeps rolling)'가 특히 좋았다"고 했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한 것은 뉴욕에 살 때다. "9·11 테러가 나던 해 뉴욕에 살았어요. 그때 저는 시(市)에 주차요금 기계를 파는 텔레마케터였어요. 테러가 난 뒤 '만약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뭘 할까' 생각해봤어요. 물건을 팔지는 않을 것 같았죠." 이후 그는 일을 그만두고 지하철 역과 공원에서 거리공연(busking)을 시작했다.

최근 국내 발매된 그의 데뷔 음반 '굿 모닝'에 실린 곡들에서는 배낭과 운동화의 질감이 느껴진다. 포크와 록이 적절히 결합된 그의 노래들은 처음 들어도 수더분하고 구수하다. 첫 곡 '선샤인'을 비롯해 그의 가사에는 '해(sun)'가 자주 나온다.

"맞아요. 저도 녹음 다 끝내고 알았어요. 왜 이렇게 '해'가 많지? 하고 생각했죠. 아마도 그게 제 음반의 분위기(vibes)였던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수록곡 중 유일하게 '웨딩 송(Wedding Song)'만이 정적(靜的)이다. 그는 "아버지의 재혼을 위해 쓴 곡"이라고 했다. "결혼식 전날 밤에 '뭘 선물할까' 하다가 즉석에서 만든 노래예요.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셔서 음반에도 넣었죠."

그는 호주의 장애 아동을 위한 음악치료 워크숍에서 자원봉사도 한다. '라' 역시 그때 만든 노래다. 쉬운 가사와 멜로디를 장애아들이 따라 부르며 웃는 걸 보면서 음악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노래 뒤에 있는 동물 울음 소리들은 모두 제 친구들이 낸 거예요. 스튜디오에서 다들 맥주 한 잔씩 하고 합창을 하다가 갑자기 누가 '꽥' 하고 소리를 내면서 동물 농장이 돼버렸죠. 하하."

그는 음반 속지로 고래를 접을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LP에서 CD로, 다시 MP3로 가면서 앨범 디자인도 사라지고 있잖아요. 이렇게 종이접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