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1인 30역… 돈키호테는 내 분신"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10.13 05:41 | 수정 : 2008.10.13 05:48

1인극 '돈키호테' 내한 공연 부르고씨 부부
조명·음향 맡은 부인 "남편 가두고 풀어주고 내가 다 결정하죠"

자크 부르고(오른쪽)와 나타샤 부르고. 이 부부 극단은 1인극‘돈키호테’로 세계를 여 행 중이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자크 부르고(Bourgaux·60·벨기에)·나타샤(42) 부부는 1인극 '돈키호테'로 한국을 여행 중이다. 남편은 배우, 아내는 조명·음향 감독이다. 이 부부 극단의 '돈키호테'는 1988년부터 프랑스·영국·미국·이탈리아·독일 등에서 공연됐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인기를 모아 다시 초청됐다. 이번엔 서울뿐 아니라 경기 고양(10~11일)·의정부(17~18일), 경북 상주(12일)에서도 공연한다.

"이 연극은 평생 내 곁에 있을 분신(分身) 같아요. 공연할 때마다 말을 타고 모험을 떠나는 기분입니다."(자크)

"남편은 이 작품에 애칭을 붙였어요. '내 늙은 애마'라고."(나타샤)

자크는 프랑스에 있는 자크 르콕 연극학교에서 연기·연출을 배웠고 프랑스의 국립극장인 코메디 프랑세즈에도 몸담았다. 의상·무대 디자인 일을 하던 나타샤를 만나 7년 전 결혼했고 아이 둘을 낳았다.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감옥에 갇히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라서, 이 부부의 결혼 생활이 궁금했다. 자크가 머뭇거리는 사이 나타샤는 "가두고 풀어주고를 다 내가 결정한다"며 웃었다.

자크는 이 1인극에서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산초, 둘시네아 같은 등장인물들을 비롯해 로시난테, 돼지, 강아지, 올빼미 등 30여개 배역을 오간다. 무대에는 의자 하나밖에 없다. 변신하는 자크, 소리와 움직임으로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다. 자크는 "나타샤가 조명과 음향으로 '운전'을 해야 앞으로 굴러가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감옥에서 세르반테스는 빗소리를 따그닥 따그닥 하는 말발굽 소리로 들으면서 환상에 빠지고 모험을 시작한다. 로시난테가 혓바닥으로 산초의 얼굴을 핥는 소리, 거대한 풍차가 도는 소리 등 자크가 직접 입으로 내야 하는 의성어, 의태어만 수십 가지다. 그는 "관찰과 연습을 통해 최적의 소리를 뽑아낸다. 종종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어느 장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고 했다.

관객 반응은 한국이 더 역동적이라고 했다. "유럽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더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성경처럼 집에 갖추고만 있을 뿐, 안 읽어요."

나타샤에게는 한국에서 입양한 남동생이 있었다. 나타샤는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때 남동생에게 편지를 부쳤는데, 뜯지도 않고 '한국 고아원에서 편지가 온 것 같다!'며 놀라서 내게 전화했다"면서 "한국을 까맣게 잊었던 동생이 이젠 한국에 와보고 싶어한다"고 했다.

20여년 전 자크가 공연을 하러 스페인에 갔을 때, 호텔방 발코니에서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을 보고 "바로 저거야!"라고 외친 게 1인극 '돈키호테'의 시작이었다. 부부는 요즘 그리스 신화를 다룬 또 한 편의 1인극을 준비 중이다. 자크는 '이야기와 소재는 단순하게,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은 많게'가 창작의 제1원칙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