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10.04 03:07
푸치니 탄생 150주년 맞아 두곳서 오페라 공연

"나는 어여쁜 부인에게는 절대 돈을 받질 않소."
애인 카바라도시를 풀어달라는 토스카의 애원에 악당 스카르피아는 이렇게 뇌까린다. '돈'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대신 '몸'을 원한다는 간악한 암시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는 2막 이 장면부터 '몸'의 드라마로 빠르게 전환한다.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의 칼을 맞고, 카바라도시는 총탄을 맞고, 토스카는 성벽 뒤로 몸을 던지는 것이다. 《토스카》는 이렇듯 자신의 욕망에 노골적인 악한과 혁명의 대의와 사랑에 충실한 두 연인이 빚어내는 삼각 드라마이기도 하다.
지난 1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와 2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막 오른 '그랜드 페스티벌'에서 모두 개막작으로 선택한 작품이 공교롭게 《토스카》였다. 올해 작곡가 탄생 150주년을 맞아 같은 시간대에 다른 지역에서 '오페라 맞대결'이 펼쳐진 것이다. 지난해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화재사건 이후 서울 오페라의 '장기 공백'을 틈타 지역 오페라가 만개(滿開)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대구와 대전의 '토스카 맞대결'을 성악·연주·무대로 나눠 살펴보았다.

성악
대구 〉 대전
주역 3명이 빚어내는 앙상블의 밀도는 대구의 《토스카》가 높았다. 1일 카바라도시 역을 맡은 이정원은 속 시원하게 고음을 객석으로 쏘아 보내는, 모처럼 등장한 '대포(大砲)' 계열의 테너다. 자신을 찾아온 정치범 안젤로티를 향해 "자넬 구해주겠네"라고 다짐하는 1막 초반부터 시원시원하고 청명한 고음을 끝까지 가져갔다.
2막에서 고문받는 카바라도시를 사이에 두고 악한 스카르피아(바리톤 고성현)와 토스카(소프라노 프란체스카 파타네)가 펼치는 신경전에서도 극적·음악적 긴장감이 모두 팽팽했다. 이들의 탄탄한 삼각 구도는 오페라를 끌고 나가는 동력(動力)이 됐다.
대구의 '토스카'가 직선적이고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질투의 화신에 가까웠다면, 2일 대전의 '토스카'를 맡은 이네스 살라자르(소프라노)는 비명마저 넉넉하게 들릴 정도로 풍성한 성량을 통해 같은 여인을 서로 다르게 그려냈다.
스카르피아 역의 미하엘 칼만디(바리톤)도 노래를 길게 늘어뜨리지 않으며 악한의 면모를 살렸지만, 카바라도시 역을 맡은 빅토르 아파나센코(테너)가 서정적인 음성에도 불구하고 고음에서 다소 힘에 부쳐 아쉬움이 남았다.
연주
대전 〉 대구
무대 밑 오케스트라 대결에서는 대전이 압도했다. 음악감독 에드몬 콜로메르(Colomer)가 지휘하는 대전시향은 약동하는 현악을 바탕으로 안정감 있고 든든하게 성악가와 합창단을 받쳤다. 음모와 성스러움이 겹치는 1막 마지막의 '테 데움(Te Deum)'에서 뿜어내는 화력이 뛰어났고, 3막의 아리아 〈저 별은 빛나건만〉 직전의 전주에 해당하는 대목에서는 마치 실내악처럼 연주해 쓸쓸한 정취를 더했다.
수성 필하모닉(지휘 발레리오 갈리)이 연주한 대구의 《토스카》에서는 서정성과 긴장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떨어지는 대목에서 낙폭(落幅)이 다소 컸다.
무대
대구 = 대전
김홍승(대구)과 조셉 프랑코니 리(대전)가 연출을 맡은 두 프로덕션 모두 시대극의 전통적 설정에 모두 충실했다. 1막 성당 장면에서는 무대 뒤편에 천장 꼭대기를 뉘어 놓아 객석에서 위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강조한 것도 같았다.
대전에서는 카바라도시가 그리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초상까지 계단에 비스듬히 뉘어 놓고서 주역들이 밟고 다니며 노래하는 설정이 독특했다. 2막에서도 면류관을 쓰고 고통받는 성화(聖畵) 뒤편에 고문실을 설치한 착상이 빛났지만, 오페라 전용극장이 아닌 탓에 막간 커튼콜과 무대 전환에만 20분씩 걸린 점이 다소 불편했다.
대구에서는 죄수들을 객석 뒤편에서 끌고 나오고, 3막 도입부에서는 양치기 소년이 2층 박스에서 등장하면서 무대 바깥까지 넓게 활용했지만, 1막 성당 설정이 2006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토스카》 프로덕션과 지나치게 흡사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구 토스카, 4일 오후 4시 대구오페라하우스 (053)666-6111
▶대전 토스카, 5일까지 대전문화예술의전당 (042)610-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