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겐 지옥, 관객에겐 환희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10.02 03:26

스즈키 연출 '엘렉트라' 한국 공연
동물적 에너지 뿜는 무대로 명성

《엘렉트라》에서 휠체어에 앉은 클리템니스트라 가 격한 감정을 토해내고 있다./아르코예술극장 제공
'밀도(density·密度)'는 공연계에서 드물게 통용되는 물리학 용어다. 무대에 담긴 에너지량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밀도가 높은 연극은 맨 뒷줄 관객까지 집중시키고 그렇지 않은 연극은 헐거워서 객석이 산만해진다. 이 밀도에 관한 한 세계적 거장으로 인정받는 일본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鈴木忠志·69)가 한국에 온다. 우리 배우들을 데리고 공연하는 연극 《엘렉트라》(Electra)다.

스즈키 다다시는 '스즈키 메소드'로 유명하다. 발을 바닥에 붙인 채 이동하고 소리를 내지르는 화법을 쓰는데, 가부키(歌舞伎) 등 일본 전통극의 연기술에 뿌리를 둔 배우 훈련술이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배우의 호흡, 몸의 중심, 에너지 소비 등 세 가지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라며 "몸의 '연비(燃費)'를 높이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어떤 자세나 상황에서도 동물적인 에너지를 뿜어내야 해 배우들에겐 '지옥 훈련술'로도 불린다.

스즈키는 한국에서 1987년 《트로이의 여인들》, 1994년 《리어왕》을 올렸지만 우리 배우들과의 작업은 처음이다. 오디션을 통해 뽑힌 배우 15명은 지난 7월부터 일본 도야마(富山)현 도가(利賀)예술촌에서 몸을 단련시켰다. 이번 《엘렉트라》가 희랍비극이라는 점에서 원초적인 에너지로 충만하면서도 절제된 무대가 기대된다. 최용훈 아르코예술극장 예술감독은 "스즈키의 《트로이의 여인들》은 우리 연극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아직도 전설처럼 남아 있다"고 말했다.

《엘렉트라》는 엘렉트라가 아버지(아가멤논)를 죽인 어머니(클리템니스트라)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스즈키는 이 복수극을 70분 길이로 압축하면서 배경을 현대로 바꿨다. 무대는 정신병원이고 모든 출연자가 정신병자로 그려진다. 엘렉트라를 비롯해 배우 대부분이 휠체어를 탄 채 연기한다. 연출가는 "세계가 거대한 정신병원이기 때문"이라며 "인간이 어떤 정신병에 걸려 있는지 해명하는 것이 예술가의 책무"라고 말했다.

변유정과 나나 타치시빌리(러시아)가 엘렉트라 역을 번갈아 맡는다. 2~4일 경기도 안산문화예술의전당, 10~11일에는 서울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031)481-4000, (02)760-4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