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대 유려함… '사계'로 겨루는 '현의 전쟁'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10.02 03:26 | 수정 : 2008.10.02 04:55

두 바이올린 거장 내한… 비발디 연주

"그게 비발디야(It's Vivaldi)!" 최근 개봉한 영화 《헬보이 2》에서 '초자연 현상 연구 방어국'에 근무하는 물고기 인간 에이브(Abe)는 수족관에서 유영할 때에도 헤드폰을 끼고 비발디의 〈사계〉를 듣는다. 평소 차분하고 이성적인 요원인 그는 사랑의 설레는 감정에 팝 발라드를 듣다가도, 주인공 헬보이가 다가가면 재빨리 리모컨으로 음악을 바꾼다. 역시 비발디의 〈사계〉다. 이 영화에선 세종솔로이스츠의 음반을 활용했다. 한국은 유난히 비발디를 사랑한다. 비발디는 백화점에서도, 지하철 역사에도,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영화 《올드보이》의 복도 대결 장면에도 흐른다. 어쩌면 우리는 〈사계〉에 포위당한 채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올 가을 한국에서 '비발디 대첩(大捷)'이 벌어진다. 바이올리니스트 파비오 비온디(Biondi)가 이끄는 명문 바로크 앙상블 단체인 '에우로파 갈란테'(Europa Galante), 줄리아노 카르미뇰라(Carmignola)와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주인공들이다. 두 단체 모두 가을 내한 공연에서 비발디를 주(主)메뉴로 골랐다.

LG아트센터 제공(왼쪽), 유유클래식 제공(오른쪽)
비온디와 카르미뇰라는 모두 이탈리아 출신의 명바이올리니스트다. 비발비의 〈사계〉를 각각 두 차례씩 녹음한, 관록 있는 명장들이기도 하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준형씨는 "카르미뇰라가 현대 악기와 바로크 악기를 넘나들며 스타일에 대한 제약 없이 유연함과 유려함을 강조한다면, 비온디는 팔색조(八色鳥)처럼 서로 다른 장식음과 즉흥 연주를 통해 음악을 총천연색으로 살려내며 과감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발디의 〈사계〉는 '국민 클래식'을 넘어서 '진부함의 위기'에 빠져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첩을 앞둔 두 명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비온디는 전화 인터뷰에서 "흔히 〈사계〉를 자연 풍경에 대한 묘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작품이 여전히 매력적인 건 따뜻함과 활기참, 슬픔과 멜랑콜리함까지 인간적 감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침 그가 묵고 있는 호텔에 전화를 걸 때에도 배경음악은 〈사계〉의 첫 소절, 바로 '봄'의 1악장이었다. 비온디는 웃으며 "그것 봐라. 바로크음악이 박물관의 낡은 음악에 머물지 않고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건 보편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카르미뇰라 역시 "4~5세 때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를 따라가 성당에서 처음 들었을 때부터 비발디는 언제나 베니스의 매력과 분위기, 색채까지 흠씬 전달해준 작곡가였다"고 말했다. 그는 "빼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비발디가 작품을 통해 바이올린이 지니고 있는 기교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큰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둘은 모두 바로크음악을 작곡 당대의 옛 악기와 연주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대 악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둘 모두 옛 악기만이 반드시 정답이라고 고집하지는 않았다. 비온디는 "현대 피아노로 바흐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것이 나쁜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 연주자의 바흐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카르미뇰라도 "현대의 바이올린은 쇠줄을 쓰고, 바로크 바이올린은 양의 창자를 정제해서 만든 거트(gut) 현을 사용하지만 '바이올린은 매력적인 악기'라는 공통점에 비한다면 미미한 차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와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 10월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02)586-2722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 내한 공연, 11월 1일 통영시민문화회관, 2일 서울 LG아트센터, 4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5일 울산 현대예술관,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