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윤영선꽃’, 연극‘여행’ 무대에서 피다

입력 : 2008.10.01 14:53



[OSEN=박희진 기자] 2005년에 초연된 윤영선 극본, 이성열 연출의 ‘여행’이 작가가 세상을 뜬 지 1년 여 만에 대학로 정보소극장서 재연됐다. 그 생생함을 느끼기 위해 작가 윤영선을 사랑하는 이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연극이 끝나고 소극장을 빠져나오며 연령층 다양한 관객들은 가지각색의 평을 늘어놓는다.

“참 좋다” 푸근해하며 후한 점수를 주는 50대와 “씁쓸하다” 가슴에 뭔가 남았다는 40대, “모르겠다” 뜻이 있으려니 싶은 20-30대가 있다. 윤영선 작가는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주려 했을까?

중년의 다섯 남자들이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으로 1박 2일의 낯선 장지로 향한다. 그들의 여정은 마치 단풍놀이 떠나는 이들처럼 들떠있고 시끌시끌하다. 객사한 친구를 찾아가는 길이 창원인지, 신창원인지 구분조차 못하고 떠나는 이들은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이기적이다. ‘죽은 줄 알았던 친구’의 갑작스런 등장과 살아있는 이들의 다툼은 썰렁한 장례식장에서 고인이 된 친구 여동생의 “죽은 우리오빠만 불쌍하제” 라는 대사와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되찾은 과거의 추억들은 그들을 점점 어지러운 세상으로 인도하고 떠나왔던 길을 어렵게 어렵게 다시 되돌아가는 인생을 익살스럽게 그려냈다.

종이보드로 만든 엑스트라와 끊임없이 마셔대는 팩소주, 그들의 음담패설은 무대 위를 가득 채웠다. 무대는 이성열 연출자 특유의 소박하고 가난한 무대로, 삶과 죽음에 대해 썰렁하고 서늘하게 표현했다. 음향으로 장소구분을 하고 배우들의 연기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무대효과는 성의 없어 보일 법도 하지만, ‘연극다운 연극’으로 관객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이성열 연출자의 매력이기도 하다.

연극 ‘여행’은 현실을 살면서 인생의 동반자라 불리는 ‘친구’의 존재와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이기적인 나를 대비시키고 있다. 누구나 안고 사는 패러독스를 소박하고 걸쭉하게 묘사하여 관객들의 가슴속에 조용히 스며들게 했다.

작가 특유의 사변적이고 해체적인 경향을 여실이 보여준다는 평을 듣는 대표작으로 윤영선이 경험한 사실을 연극 ‘여행’을 통해 무대에 올림으로써 그가 말하고자 했던 건, 리얼한 삶이었다. 작가가 유도했던 것이 ‘삶’이었기에 관객들은 자신이 느낀 감동조차 이기적이다.

작가 윤영선이 세상을 뜨고 작품만 남아 있는 지금, 관객들은 무대 위 작품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담아가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해답은 각자의 ‘삶’에서 느낄 줄 아는 감동의 깊이 따라 달랐다. 연극 ‘여행’에서 윤영선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친구’ ‘죽음’ ‘윤영선’… , 그 어떤 것도 아닌, 개인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간암으로 눈을 감기 얼마 전, 병상에 누워 자신의 이름을 '나무윤영선꽃'으로 개명하겠다는 뜻을 글로 남겼다는 극작가 윤영선이다. 이제 그는 자신이 남긴 작품으로 그가 베풀었던 사랑을 통해 우리 가슴 속에 남는 영원한 '나무윤영선꽃'이 되어 피어나고 있다.

jin@osen.co.kr
<사진> 연극 ‘여행’의 공연 장면.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제보및 보도자료 osenstar@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s ⓒ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