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비엔날레' 연쇄 리뷰] '전시정보' 잔뜩 나열한 전시의 공허함…

  • 김성원·아틀리에에르메스 디렉터

입력 : 2008.09.22 03:29

[1]광주 비엔날레
'전시속의 전시'라는 독특한 발상 못살리고
세련된 진열에 그친 감

광주비엔날레를 찾은 관람객들이 독일작가 한스 하케의 설치작품〈아래서 위로 흐르 다〉앞에서 발길을 멈췄다./광주비엔날레 제공

광주비엔날레·부산비엔날레·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등 국내 '빅3 비엔날레'가 이달 초 잇달아 개막했다. 일반인들에겐 현대미술 화제작을 두루 살펴볼 기회, 전문가들에겐 현대미술의 전위가 어느 방향으로 전진 중인지 가늠해볼 기회다. 본지는 '빅3 비엔날레'에 대한 국내 정상급 평론가와 큐레이터의 리뷰를 연재한다. 일반인들에겐 친절한 안내판으로, 전문가들에겐 흥미로운 발제로 읽힐 것이다.  편집자


오쿠이 엔위저 감독의 2008 광주 비엔날레는 '주제 없는 전시'라는 선언과 함께 특정 테마 대신 '연례보고'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엔위저 감독의 《연례보고: 일 년 동안의 전시》는 변화하는 현대미술의 복합성과 그 잠재성을 소통하기 위한 일종의 로드맵이다. 미술의 '현재'를 읽기 위한 이 로드맵은 엔위저 감독이 1년 동안 세계 각지를 돌며 선별한 화제전들, 개별적으로 초청된 작가들의 새 작품, 그리고 젊은 큐레이터들의 제안으로 완결된다.

이 전시는 유럽 편향적 선택보다는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의 지역적 안배에 무게 중심을 두며, 국제 비엔날레에 친숙한 이름들보다는 새로운 작가들에 주목하고, 지정학적 소수집단의 문제, 문화 권력과 경제적 이슈, 지역적 맥락과 연결된 사회 정치적 억압을 다루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특정 주제는 없다 할지라도, 엔위저 감독의 현대미술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할 수 있는 충분한 경로들을 제안하고 있다.

여기서 새로운 시도를 찾는다면, 아마도 엔위저 감독이 제시한 '전시 속의 전시'라는 화두에 있을 것이다. 2007년과 2008년 사이에 있었던 전시들을 초청하며, 1년이라는 '현재'를 주제 없이 가로질러 보자는 '전시 속의 전시'는 흥미롭고 독특한 발상이다. 단, 이것이 단순히 감독이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보았고, 그 선택이 어떤 것인지를 보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또 우리가 미처 못 본 전시의 요약본을 한 장소에 모아서 보여주려는 과잉 친절이 아니라면 말이다.

유명 미술관 전시든 이름 모를 대안공간 전시든, 그 전시가 주목할 만한 '전시'였다면, 그 전시들이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이 전제되어야 한다. 전시는 작품을 어디서, 왜,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는 민감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미국 보스턴에 있는 가드너 미술관의 독특한 맥락이 사라진 이탈리아 작가 스테파노 아리엔티의 전시가 광주 비엔날레에서 소개될 때, 화제의 전시로서 설득력이 있는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여백의 발견 전》과 같은 대형 기획전에서 작가 한 명만을 보여주면서 주목할 만한 전시라고 말할 수 있는지, 또 미국 작가 고든 마타 클락이나 독일 작가 한스 하케의 작품을 보여주면서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과 폴라쿠퍼 화랑이 언급돼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기게 된다. '일 년 동안의 전시'라는 개념 없이도 이 작가들은 광주 비엔날레에서 얼마든지 더 잘 조망될 수 있지 않는가.

각 전시의 특성은 사라지고 작품 몇 점과 도록에 실린 보도 자료만이 전시들을 대변할 때, '전시 속의 전시'라는 독특한 개념은 작년 이맘때 어디서 열린 누구의 전시라는 정보의 세련된 진열을 위한 것일 뿐이다. 우리가 《연례보고: 일 년 동안의 전시》에서 기대했던 것이 전시정보인가 아니면 '전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