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의 자존심, 다시 찾아 온 ‘명성황후’

입력 : 2008.09.20 11:11



[OSEN=박희진 기자] 한국 뮤지컬의 자존심 ‘명성황후’가 다시 왔다.

조선의 마지막 국모 ‘명성황후’의 비극을 소재로 1995년 초연된 ‘명성황후’는 14년 동안 전 세계에 한국뮤지컬을 대표한, 토종 뮤지컬계의 자존심이다. 관객들은 작전명 ‘여우사냥’으로 명성황후을 잔혹하게 시해해 조선의 황실을 짓밟았던 일본군들의 만행을 지켜보며 피가 거꾸로 솟는 울분을 느끼곤 했다.

그 생생한 비극이 지난 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다시 올려졌다. 높은 관람료가 부담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명성황후’라는 이름 하나로 기대에 부푼 관객들이 세종문화회관 세종대극장을 가득 채웠다. 이미 여러 차례 상연됐고 그 동안 공연장을 찾은 관객수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텐데 여전히 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상황이 ‘명성황후’의 위상을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막이 오름과 동시에 ‘이해랑’ 연극상을 받는 무대미술가 박동우의 역작이 베일을 벗었다. 무대구성은 단순했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과 눈부신 의상, 색깔 있는 특수효과는 무대를 효과적으로 연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회전무대와 커튼효과는 빠른 무대전환을 가능케 해 극중 인물들의 심리적 단절을 막았다.

특히,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심리전에서 유지된 팽팽한 긴장감은 수준 높은 무대 장치에서 오는 감동이었다. 심리적 갈등 상황을 회전무대 위에 배치해 빠르게 전환시킴으로써 긴박감을 더했다.

아쉬움도 있었다. 눈을 현혹하는 화려한 무대와는 달리, 배우들은 관객과의 소통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가사 전달력이 미흡해 관객들은 답답한 마음으로 청각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하지만 2% 부족했던 옥에 티는 10년 동안 ‘조선의 국모’ 자리를 지켜온 이태원의 열정적인 무대와 주연 같은 조연들의 활약으로 쉬 묻힐 수 있었다. 아역배우들은 맑고 고운 목소리로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절도 있는 군무와 호쾌한 무과시험 장면, 신들린 점쟁이의 강렬한 포스와 차가움은 관객들을 소름 끼치게 했다. 조연들의 리얼한 연기와 웅장한 합창, 가슴을 울리는 음향효과는 몇몇 배우의 실수가 주는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았다.

감동을 실어나르는 마지막 장면, ‘백성이여 일어나라’가 마무리 되자 관객들의 박수 열기가 장내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아낌없는 환호는 뮤지컬 ‘명성황후’가 지난 14년간 한국의 대표 뮤지컬로 자리매김 한 이유를 알게 했다.

고궁 뮤지컬 ‘대장금’과 ‘캣츠’ ‘클레오파트라’ 등 최근 가을밤을 수놓을 대작 뮤지컬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명성황후’가 뜨뜻한 ‘토종’의 맛을 지속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초심을 잃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또 한번 강조하고 싶은 시점이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상징성은 이미 문화계를 뛰어 넘었다. 어려웠던 한국 뮤지컬계에 희망을 안겨준 대작이며 우리민족의 한을 그려 넣은, 한국의 뮤지컬이다. 한민족의 가슴 속 응어리를 녹여줄 수 있는 작품이기에 14년간 뮤지컬의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그런 이유로 전 국민이 ‘보고 싶은 뮤지컬’ ‘봐야하는 뮤지컬’로 손꼽아 왔다. 오랜 시간 사랑 받아온 뮤지컬 ‘명성황후’의 제작진이 마지막 공연까지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다.

jin@osen.co.kr
<사진> 에이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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