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작지만 강하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09.18 06:20

제작비 1억 뮤지컬 '사춘기' 꽉찬 속 맛

가로 6m에 세로 7m, 사각의 빈 공간에 의자 6개, 배우 7명뿐이다. 남루한 무대를 보며 '싼티 나네…' 속으로 빈정댄 관객도 있었다. 게다가 배우들은 다 무명이다. 어디다 코드를 맞추나, 객석은 잠시 초점을 잃고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무대가, 그 배우들이 1인 다역(多役)으로 땀내나는 장면들을 빚어냈고 긴장·이완의 리듬으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선입견은 산산조각 났다.

이번이 초연인 창작 뮤지컬 《사춘기》(이희준 작·김운기 연출)는 제작비 1억 원의 '저예산'이다. 그러나 속은 옹골찼다. 독일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1891년 희곡을 뼈대로 삼은 《사춘기》는 '입시' '성형' '성(性)' '자살' 같은 지금 우리 10대 청소년들의 고민으로 살집을 만들었다. 대사가 거의 안 느껴질 정도로 뮤지컬적이고 장면들의 이음매도 부드러웠다.

이들은 한 학급의 친구 사이다. 전학 오자마자 치른 시험에서 1등을 한 영민은 시니컬하다. 그가 우울증에 빠진 선규, 성경밖에 모르는 모범생 수희를 만나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여장(女裝) 연기에 "서울대에 갈 거야~" "성형부터 할 거야~" 같은 노랫말이 재미있다. 음악과 움직임, 프로젝션과 그림자극 등을 이용해 드라마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느낌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표현한 장면도 아이디어가 빛났다.
작가와 연출은 원작을 한국화하면서 설득력 있는 무대언어를 보여줬다. 다만, 굳이 메피스토·그레첸·발푸르기스 같은 '흔적'을 남길 필요가 있었는지, 그 어정쩡한 미련이 아쉬웠다. "입맞추지 마"로 귓바퀴에 맴도는 영민과 수희의 이중창 〈그레첸〉, 합창 〈발푸르기스의 밤〉 등 속이 꽉 찬 삽입곡들은 작곡가(박정아)를 기억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특히 여배우 전미도는 맑고 힘찬 가창력을 들려줬다. 박해수 맹주영 조창우 이기섭 윤원재 임철수. '사춘기'를 겪고 이제 성인이 된 배우들의 이름이다.

▶10월 12일까지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02)3272-3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