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9.16 03:08
<3> '살아있는 최고의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 인터뷰
나폴리역 조각품 등 2012년까지 스케줄 꽉 차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그 답을 찾아 헤매지요

어느 날 신(神)이 마천루가 빽빽한 대도시를 내려다보고 "저 아래 인간들에게 한 조각 푸른 하늘을 보여주리라" 결심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신은 아마도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Kapoor·54)가 한 작업과 비슷한 일을 할 것 같다.
카푸어는 맨해튼 록펠러센터 앞에 거울처럼 매끈한 지름 10m짜리 스테인리스 스틸 원반을 비스듬히 세웠다. 그러자 마천루 사이를 개미처럼 걸어가던 뉴요커들 눈앞에 지름 10m짜리 하늘이 나타났다. 호수처럼 파란 하늘이 원반에 비친 것이다.
〈하늘 거울(Sky Mirror)〉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2006년 9~10월에 불과 한달 남짓 록펠러센터 앞에 전시된 뒤 철거됐다. 모자에서 꽃다발을 꺼내 허공에 흩날려 버리듯 뉴욕 복판에 하늘을 끌어들였다 사라지게 한 카푸어를 두고 뉴욕타임스지(紙)는 '마법사'라고 했다. '살아있는 가장 중요한 조각가'로 세계 미술계가 평가하는 카푸어를 영국의 작업장에서 만났다.
카푸어는 맨해튼 록펠러센터 앞에 거울처럼 매끈한 지름 10m짜리 스테인리스 스틸 원반을 비스듬히 세웠다. 그러자 마천루 사이를 개미처럼 걸어가던 뉴요커들 눈앞에 지름 10m짜리 하늘이 나타났다. 호수처럼 파란 하늘이 원반에 비친 것이다.
〈하늘 거울(Sky Mirror)〉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2006년 9~10월에 불과 한달 남짓 록펠러센터 앞에 전시된 뒤 철거됐다. 모자에서 꽃다발을 꺼내 허공에 흩날려 버리듯 뉴욕 복판에 하늘을 끌어들였다 사라지게 한 카푸어를 두고 뉴욕타임스지(紙)는 '마법사'라고 했다. '살아있는 가장 중요한 조각가'로 세계 미술계가 평가하는 카푸어를 영국의 작업장에서 만났다.

◆마법사의 공장
12일 오전 9시, 런던 남쪽에 있는 오래된 공장 초인종을 누르자 카푸어가 활기차게 걸어 나왔다. 공장을 개조한 스튜디오를 안내하던 그가 작품 모형 수십 개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건 이탈리아 나폴리에 짓고 있는 지하철역, 저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짓고 있는 박물관, 그건 뉴질랜드에 세울 예정인 조각품…" 하고 설명했다. 그는 "2012년까지 스케줄이 꽉 찼다"고 했다. 조수 25명이 카푸어를 도와 세계 곳곳에 카푸어의 작품을 세운다.
◆존재하는 것과 사라지는 것
인터뷰는 1시간 40분에 걸쳐 진행됐다. 카푸어는 명료한 영국 억양을 썼고, 얘기하다 흥이 나면 시원하게 껄껄 웃었다.
―당신이 조각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는 사람이 많던데요.
"인류는 오래 전부터 이집트 피라미드, 바빌론 공중정원 같은 거대한 기념비를 만들어왔습니다.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인가' '하늘은 무엇이고, 땅은 무엇인가' 하는 인류의 오랜 고민이 녹아 있지요. 내 작품도 어떤 면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을 거예요."
〈하늘 거울〉 이전에 카푸어는 2004년 미국 시카고의 밀레니엄 공원에 높이 10m, 길이 20m, 폭 12m짜리 거대한 〈구름 문(Cloud Gate)〉을 세웠다. 앞으로 영국 북부에 길이 200m의 스테인리스 스틸 교량을 세울 구상도 하고 있다. 그는 이처럼 거대한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표면에 관객 스스로와 자연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봄으로써 전혀 다른 풍경을 창조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나는 무엇인가?' '눈으로 보는 것은 실재하는 것인가?' 같은 성찰을 요구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중요한 문제는 뭔가요?
"우리가 왜 여기 있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죠. 아이를 키우며 '이 아이의 자아는 어디서 왔을까' 놀라게 되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들의 자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모든 심오한 질문이 종국에는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압축되지요."
◆부처에게 길을 묻다
―당신이 찾은 '대답'은 무엇인가요?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 인생일 뿐, 완전한 대답은 없습니다. 바로 그 점이 부처의 가르침이기도 하고요. 저는 매일 새벽 1시간 동안 참선하고 독경을 하는데 수행과 예술은 아주 흡사합니다. 둘 다 일상이고, 반복이지요."
―당신은 젊은 시절부터 유망주로 손꼽혔는데 스스로는 '불행했다'고 말했습니다.
"내 속에 갈등이 꽉 차 있었어요. 그래서 18년간 정신분석을 받기도 했지요. 미술을 택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정신분석과 미술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갈등과 질문을 풀어내는 '성찰과정(process of reflection)'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도, 나도 아웃사이더"
카푸어의 젊은 날을 지켜본 영국 화상(畵商) 니콜라스 록스데일(Logsdail)은 "그는 젊어서부터 '남이야 뭐라 하건 내 길을 간다'고 마음먹은 독종이었다"고 회고했고, "그건 아마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여러 집단에 발을 걸친 데서 비롯된 것 같다"고 했다. 곁에서 듣던 카푸어는 "맞는 말씀" 이라며 "예술가뿐 아니라 현대인은 모두 아웃사이더"라고 말했다.
카푸어는 2003년 한국 전시를 통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다. 그의 신작 전시회가 다음달 5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 평단이 "살아있는 가장 중요한 조각가 중 하나"로 꼽는 그의 작품을 직접 볼 기회다. (02)735-8449
12일 오전 9시, 런던 남쪽에 있는 오래된 공장 초인종을 누르자 카푸어가 활기차게 걸어 나왔다. 공장을 개조한 스튜디오를 안내하던 그가 작품 모형 수십 개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건 이탈리아 나폴리에 짓고 있는 지하철역, 저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짓고 있는 박물관, 그건 뉴질랜드에 세울 예정인 조각품…" 하고 설명했다. 그는 "2012년까지 스케줄이 꽉 찼다"고 했다. 조수 25명이 카푸어를 도와 세계 곳곳에 카푸어의 작품을 세운다.
◆존재하는 것과 사라지는 것
인터뷰는 1시간 40분에 걸쳐 진행됐다. 카푸어는 명료한 영국 억양을 썼고, 얘기하다 흥이 나면 시원하게 껄껄 웃었다.
―당신이 조각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는 사람이 많던데요.
"인류는 오래 전부터 이집트 피라미드, 바빌론 공중정원 같은 거대한 기념비를 만들어왔습니다.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인가' '하늘은 무엇이고, 땅은 무엇인가' 하는 인류의 오랜 고민이 녹아 있지요. 내 작품도 어떤 면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을 거예요."
〈하늘 거울〉 이전에 카푸어는 2004년 미국 시카고의 밀레니엄 공원에 높이 10m, 길이 20m, 폭 12m짜리 거대한 〈구름 문(Cloud Gate)〉을 세웠다. 앞으로 영국 북부에 길이 200m의 스테인리스 스틸 교량을 세울 구상도 하고 있다. 그는 이처럼 거대한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표면에 관객 스스로와 자연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봄으로써 전혀 다른 풍경을 창조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나는 무엇인가?' '눈으로 보는 것은 실재하는 것인가?' 같은 성찰을 요구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중요한 문제는 뭔가요?
"우리가 왜 여기 있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죠. 아이를 키우며 '이 아이의 자아는 어디서 왔을까' 놀라게 되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들의 자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모든 심오한 질문이 종국에는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압축되지요."
◆부처에게 길을 묻다
―당신이 찾은 '대답'은 무엇인가요?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 인생일 뿐, 완전한 대답은 없습니다. 바로 그 점이 부처의 가르침이기도 하고요. 저는 매일 새벽 1시간 동안 참선하고 독경을 하는데 수행과 예술은 아주 흡사합니다. 둘 다 일상이고, 반복이지요."
―당신은 젊은 시절부터 유망주로 손꼽혔는데 스스로는 '불행했다'고 말했습니다.
"내 속에 갈등이 꽉 차 있었어요. 그래서 18년간 정신분석을 받기도 했지요. 미술을 택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정신분석과 미술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갈등과 질문을 풀어내는 '성찰과정(process of reflection)'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도, 나도 아웃사이더"
카푸어의 젊은 날을 지켜본 영국 화상(畵商) 니콜라스 록스데일(Logsdail)은 "그는 젊어서부터 '남이야 뭐라 하건 내 길을 간다'고 마음먹은 독종이었다"고 회고했고, "그건 아마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여러 집단에 발을 걸친 데서 비롯된 것 같다"고 했다. 곁에서 듣던 카푸어는 "맞는 말씀" 이라며 "예술가뿐 아니라 현대인은 모두 아웃사이더"라고 말했다.
카푸어는 2003년 한국 전시를 통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다. 그의 신작 전시회가 다음달 5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 평단이 "살아있는 가장 중요한 조각가 중 하나"로 꼽는 그의 작품을 직접 볼 기회다. (02)735-8449
카푸어는 누구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수로학자(水路學者·상수도 등 관개사업에 관한 학문)였고 어머니는 이라크에서 자란 유대인 랍비의 딸이었다. 부모는 자녀에게 힌두교나 유대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17세부터 2년간 이스라엘의 한 키부츠(공동농장)에서 생활했지만 이스라엘에서 민족주의 정서가 강해지는 데 염증을 느끼고 떠났다. 그는 이후 영국 첼시미대를 졸업하고 조각가가 됐다. 80년대에 리처드 디컨(Deacon), 빌 우드로(Woodrow) 등 동년배 조각가들과 함께 '젊은 영국 조각가'(The Young British Sculptors)로 불렸다.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영국 대표로 참가했고, 1991년 세계적 권위의 터너프라이즈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