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9.10 09:00
서울시 오페라단 11월 27일부터 세종대극장에서 공연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스'는 작곡가가 54세의 나이에 쓴 스물다섯 번째 오페라이다. 그가 이 뒤로 쓰는 오페라는 '아이다', '오텔로', '팔스타프' 단 세 작품이 있을 뿐이다. 그 만큼 완숙기에 이른 베르디가 드라마와 음악의 조화를 완성한 오페라가 '돈 카를로스'이다.
베르디에게 가장 중요한 작가는 셰익스피어와 프리드리히 실러였다. 특히 실러는 막 눈을 뜨기 시작한 근대 시민 사회를 계몽시켜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이끌고자 했던 실천 작가였다.
여러 나라로 쪼개진 채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와 같은 외세에 시달려 온 이탈리아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던 베르디에게 그는 모범이 되는 작가였다. 베르디는 이미 실러의 '잔 다르크'와 '산적', '간계와 사랑'('루이자 밀러')을 오페라로 만들었고, '돈 카를로스' 역시 이 독일 시인의 희곡을 원작으로 했다.
'돈 카를로스'는 음악사상 모든 오페라를 통틀어 인물의 개성이 가장 뚜렷하게 부각되고 서로 대립과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실러 그리고 베르디의 인물은 이성과 감성이 그 안에서 충돌하고 갈등하는 가운데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불태운다. 각각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드라마의 골격이 드러난다.
16세기 말 스페인. 펠리페 2세가 ‘무적함대’로 상징되는 절대 왕권을 휘두르던 때이다. 펠리페 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의 아들로 아버지로부터 최대강국인 스페인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는 모두 네 차례나 결혼을 했다. 첫째는 포르투갈의 마리, 둘째는 영국 여왕이었던 ‘피의 메리’, 세 번째는 프랑스 앙리 2세의 딸 엘리자베스 발루아, 마지막 아내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안나였다.
문제는 바로 이 결혼에서 비롯된다. 펠리페 2세의 아들이요, 황태자인 돈 카를로스는 마리 왕비의 아들이다. 그는 프랑스 왕의 사위로 엘리자베스 발루아와 혼담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펠리페 2세는 프랑스와 강화조약을 맺으면서 며느리가 될 엘리자베스를 자신의 왕비로 데려온다. 왕자와 공주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다.
여기에 제4의 인물이 있다. 에볼리 공작부인의 본명은 아나 데 멘도사이다. 에볼리는 펠리페 2세 국왕의 신하이던 그녀 남편의 출신지명이다. 그녀는 한쪽 눈이 멀어 안대를 하고 다녔지만, 아름다운 용모와 출중한 재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펠리페 2세는 두 번째 아내였던 영국의 메리 여왕과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져 지냈고, 메리는 무척 박색에 성격도 드세었다. 에볼리 공작부인은 그런 펠리페 2세의 정부(情婦)였다.
엇갈린 사랑은 계속된다. 에볼리 공작부인은 펠리페 2세가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한 뒤에도 관계를 이어간다. 또한 남 몰래 왕자 돈 카를로스를 흠모하고 있다. 왕자의 마음이 왕비에게 가 있음을 안 에볼리는 앙심을 품는다.
다섯 번째 인물은 돈 카를로스 왕자의 친구인 포사 후작이다. 포사는 가톨릭의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던 신교도 플랑드르 지방의 봉기를 마음속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는 민중의 뜻에 부합하는 정의를 세우고자 노력하는 이상주의자이다. 국왕의 앞에서 자신의 뜻을 서슴없이 주장하고, 펠리페 2세는 아첨하지 않는 포사의 기개를 높이 산다.
포사는 돈 카를로스 왕자의 충실한 벗으로서 그가 왕비에 대한 빗나간 사랑을 접고 자신과 함께 플랑드르의 독립을 위해 노력할 것을 설득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만한 여섯 번째 인물은 대심문관이다. 종교재판관이라도 부르는 이 노인은 교회의 권위가 지배하던 중세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존재이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두 눈이 먼 대심문관은 그의 말 한 마디에 마녀 사냥과 화형이 집행되는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실러가 묘사한 대심문관은 뒤에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한 장(章)으로 자세히 언급되기도 한다. 대심문관은 가톨릭의 권위에 도전하는 돈 카를로스와 포사가 눈엣가시이기에 펠리페 2세에게 두 사람을 처벌하라고 종용한다.
주인공 다섯 사람 가운데, 포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실러의 원작은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만든 ‘픽션’이다. 그러면서도 인물의 소개에서 벌써 대부분의 갈등 관계가 드러날 정도로 드라마는 치밀하다.
베르디에게 가장 중요한 작가는 셰익스피어와 프리드리히 실러였다. 특히 실러는 막 눈을 뜨기 시작한 근대 시민 사회를 계몽시켜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이끌고자 했던 실천 작가였다.
여러 나라로 쪼개진 채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와 같은 외세에 시달려 온 이탈리아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던 베르디에게 그는 모범이 되는 작가였다. 베르디는 이미 실러의 '잔 다르크'와 '산적', '간계와 사랑'('루이자 밀러')을 오페라로 만들었고, '돈 카를로스' 역시 이 독일 시인의 희곡을 원작으로 했다.
'돈 카를로스'는 음악사상 모든 오페라를 통틀어 인물의 개성이 가장 뚜렷하게 부각되고 서로 대립과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실러 그리고 베르디의 인물은 이성과 감성이 그 안에서 충돌하고 갈등하는 가운데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불태운다. 각각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드라마의 골격이 드러난다.
16세기 말 스페인. 펠리페 2세가 ‘무적함대’로 상징되는 절대 왕권을 휘두르던 때이다. 펠리페 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의 아들로 아버지로부터 최대강국인 스페인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는 모두 네 차례나 결혼을 했다. 첫째는 포르투갈의 마리, 둘째는 영국 여왕이었던 ‘피의 메리’, 세 번째는 프랑스 앙리 2세의 딸 엘리자베스 발루아, 마지막 아내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안나였다.
문제는 바로 이 결혼에서 비롯된다. 펠리페 2세의 아들이요, 황태자인 돈 카를로스는 마리 왕비의 아들이다. 그는 프랑스 왕의 사위로 엘리자베스 발루아와 혼담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펠리페 2세는 프랑스와 강화조약을 맺으면서 며느리가 될 엘리자베스를 자신의 왕비로 데려온다. 왕자와 공주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다.
여기에 제4의 인물이 있다. 에볼리 공작부인의 본명은 아나 데 멘도사이다. 에볼리는 펠리페 2세 국왕의 신하이던 그녀 남편의 출신지명이다. 그녀는 한쪽 눈이 멀어 안대를 하고 다녔지만, 아름다운 용모와 출중한 재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펠리페 2세는 두 번째 아내였던 영국의 메리 여왕과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져 지냈고, 메리는 무척 박색에 성격도 드세었다. 에볼리 공작부인은 그런 펠리페 2세의 정부(情婦)였다.
엇갈린 사랑은 계속된다. 에볼리 공작부인은 펠리페 2세가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한 뒤에도 관계를 이어간다. 또한 남 몰래 왕자 돈 카를로스를 흠모하고 있다. 왕자의 마음이 왕비에게 가 있음을 안 에볼리는 앙심을 품는다.
다섯 번째 인물은 돈 카를로스 왕자의 친구인 포사 후작이다. 포사는 가톨릭의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던 신교도 플랑드르 지방의 봉기를 마음속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는 민중의 뜻에 부합하는 정의를 세우고자 노력하는 이상주의자이다. 국왕의 앞에서 자신의 뜻을 서슴없이 주장하고, 펠리페 2세는 아첨하지 않는 포사의 기개를 높이 산다.
포사는 돈 카를로스 왕자의 충실한 벗으로서 그가 왕비에 대한 빗나간 사랑을 접고 자신과 함께 플랑드르의 독립을 위해 노력할 것을 설득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만한 여섯 번째 인물은 대심문관이다. 종교재판관이라도 부르는 이 노인은 교회의 권위가 지배하던 중세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존재이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두 눈이 먼 대심문관은 그의 말 한 마디에 마녀 사냥과 화형이 집행되는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실러가 묘사한 대심문관은 뒤에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한 장(章)으로 자세히 언급되기도 한다. 대심문관은 가톨릭의 권위에 도전하는 돈 카를로스와 포사가 눈엣가시이기에 펠리페 2세에게 두 사람을 처벌하라고 종용한다.
주인공 다섯 사람 가운데, 포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실러의 원작은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만든 ‘픽션’이다. 그러면서도 인물의 소개에서 벌써 대부분의 갈등 관계가 드러날 정도로 드라마는 치밀하다.

베르디도 그와 같은 원작의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독창보다는 중창의 묘미를 극대화 하고 있다. 돈 카를로스와 포사 후작이 나누는 우정의 대화, 포사와 펠리페 2세 사이의 기(氣) 대결, 아버지에 반발하는 돈 카를로스, 신권과 왕권의 힘을 겨루는 대심문관과 펠리페 2세의 모습이 베르디 특유의 남성적이고 깊이 있는 음악으로 표현된다.
이 가운데 돈 카를로스만이 테너, 포사는 바리톤, 왕과 대심문관은 베이스일 정도로 이 오페라는 저음이 주도하는 작품이다.
로맨스 또한 절절하다. 돈 카를로스와 엘리자베스의 비통한 사랑, 왕자를 향한 에볼리 공작부인의 빗나간 마음은 자칫 무거운 권력 투쟁으로 치닫기 쉬운 작품에 균형감을 가져온다.
특히 에볼리는 주변 인물이면서도 매력과 질투심을 발산하는 모습에서 카리스마를 요구한다. 여성적인 매력 때문에 파멸하고 마는 신세를 한탄하는 아리아 ‘저주스러운 미모’에서 그녀의 존재감이 극대화된다.
이제 드라마는 막바지로 치닫는다. 포사 후작은 국왕에 맞선 죄로 투옥된 친구 돈 카를로스를 면회하러 감옥에 간다. 포사는 왕자가 플랑드르의 독립을 완수케 하기 위해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기로 결심하고 감옥에서 작별을 고한다. 포사는 등 뒤를 쏜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나고 뒤늦게 들어온 펠리페 2세는 충신의 죽음을 아쉬워한다.
석방을 원하는 민중의 요구로 돈 카를로스는 출옥한다. 그는 플랑드르에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스페인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를 만난다. 계모이자 마음속의 연인인 왕비에게 돈 카를로스가 작별 키스를 하는 순간 펠리페 2세와 대심문관 일행이 등장한다. 순수한 마음의 두 사람은 모두의 오해를 받는다.
실러는 돈 카를로스의 신변을 대심문관에게 넘기는 것으로 작품을 마무리하며 극을 열린 구조로 내버려 둔다. 반면 베르디의 오페라는 돈 카를로스가 체포되려는 순간 할아버지인 카를 5세의 망령이 나타나 왕자를 데리고 가는 것으로 끝마친다.
실러에 비하면 오페라의 결말은 다소 전근대적지만 '돈 카를로스'는 이상의 실현을 위해 암살자의 총탄을 피하지 않는 결연한 포사, 사랑에 고민하는 나약한 모습에서 진정 지도자다운 풍모로 거듭나는 돈 카를로스를 통해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통속적인 내용의 벨칸토 오페라나 규모에 집착한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것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은 '리골레토', '가면무도회', '라 트라비아타'로 이어지는 베르디 중기 걸작을 통해 전통에 충실한 무대와 사실감 있는 연출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베르디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완성도 높은 오페라 '돈 카를로스(11.27~30 세종대극장)'를 통해 전작에서 보여준 역량이 다시 한 번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 가운데 돈 카를로스만이 테너, 포사는 바리톤, 왕과 대심문관은 베이스일 정도로 이 오페라는 저음이 주도하는 작품이다.
로맨스 또한 절절하다. 돈 카를로스와 엘리자베스의 비통한 사랑, 왕자를 향한 에볼리 공작부인의 빗나간 마음은 자칫 무거운 권력 투쟁으로 치닫기 쉬운 작품에 균형감을 가져온다.
특히 에볼리는 주변 인물이면서도 매력과 질투심을 발산하는 모습에서 카리스마를 요구한다. 여성적인 매력 때문에 파멸하고 마는 신세를 한탄하는 아리아 ‘저주스러운 미모’에서 그녀의 존재감이 극대화된다.
이제 드라마는 막바지로 치닫는다. 포사 후작은 국왕에 맞선 죄로 투옥된 친구 돈 카를로스를 면회하러 감옥에 간다. 포사는 왕자가 플랑드르의 독립을 완수케 하기 위해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기로 결심하고 감옥에서 작별을 고한다. 포사는 등 뒤를 쏜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나고 뒤늦게 들어온 펠리페 2세는 충신의 죽음을 아쉬워한다.
석방을 원하는 민중의 요구로 돈 카를로스는 출옥한다. 그는 플랑드르에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스페인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를 만난다. 계모이자 마음속의 연인인 왕비에게 돈 카를로스가 작별 키스를 하는 순간 펠리페 2세와 대심문관 일행이 등장한다. 순수한 마음의 두 사람은 모두의 오해를 받는다.
실러는 돈 카를로스의 신변을 대심문관에게 넘기는 것으로 작품을 마무리하며 극을 열린 구조로 내버려 둔다. 반면 베르디의 오페라는 돈 카를로스가 체포되려는 순간 할아버지인 카를 5세의 망령이 나타나 왕자를 데리고 가는 것으로 끝마친다.
실러에 비하면 오페라의 결말은 다소 전근대적지만 '돈 카를로스'는 이상의 실현을 위해 암살자의 총탄을 피하지 않는 결연한 포사, 사랑에 고민하는 나약한 모습에서 진정 지도자다운 풍모로 거듭나는 돈 카를로스를 통해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통속적인 내용의 벨칸토 오페라나 규모에 집착한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것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은 '리골레토', '가면무도회', '라 트라비아타'로 이어지는 베르디 중기 걸작을 통해 전통에 충실한 무대와 사실감 있는 연출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베르디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완성도 높은 오페라 '돈 카를로스(11.27~30 세종대극장)'를 통해 전작에서 보여준 역량이 다시 한 번 발휘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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