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9.05 09:13
노오란 가을빛 음악회에 초대합니다

세계 첫 손으로 꼽히는 오페라 극장 소속의 오케스트라 라 스칼라 필하모닉은 이태리 최고의 오케스트라이다. 이들의 뛰어난 실력은 오페라를 뛰어넘어 관현악 레퍼토리에서도 여전히 유효할까? 이제 실연으로 확인해 볼 차례다.
밀라노 라 스칼라 필하모닉(Filarmonica della Scala)이 한국을 찾는다. 9월 9일에는 성남 아트센터에서, 그 다음날에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모두 2회의 내한 콘서트를 치를 예정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성남)과 말러의 교향곡 1번(서울)을 무대에 올리며, 이번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다시금 세계적인 유명인으로 급부상한 중국의 자랑 랑랑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협연할 예정이다.
라 스칼라 필하모닉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소속 오케스트라다. 세계에서 첫 손에 꼽히는 오페라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답게 정식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더라면 더할 나위 없는 호사가 될 수 있었겠지만, 이들이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와 말러의 교향곡,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도 충분히 기대가 된다.
오페라극장 소속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과 협주곡이 왠지 못 미더운가? 그런 염려는 붙들어 매어도 좋을 것이다. 밀라노 라 스칼라 필하모닉은 오페라뿐만 아니라 일반 콘서트 레퍼토리에서도 명실상부한 이탈리아 최고의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에도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나 토리노의 RAI 방송 오케스트라와 같은 콘서트 전문 오케스트라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라 스칼라 필하모닉을 꼽는 것에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들의 주 활동무대가 오페라 피트 속인 것은 사실이지만, 오페라가 아닌 일반 관현악 레퍼토리에서도 이들의 뛰어난 합주력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라 스칼라의 뼈대가 된 세계적인 지휘자들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역사는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찬란한 역사와 함께 한다. 라 스칼라 극장은 당시 밀라노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으로 1778년에 완공되었다.
살리에리, 치마로사 등의 고전파 작곡가들의 시대를 거쳐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의 벨칸토 오페라 삼총사가 이 극장을 무대로 맹활약했고, 이후 베르디의 화려한 영광 역시 이곳에서 펼쳐졌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라 스칼라와 함께 했던 가장 위대한 이름은 바로 아르투르 토스카니니다.
토스카니니는 1, 2차 대전으로 두 번이나 기능을 잃어버렸던 이 극장을 부활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다. 토스카니니가 미국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이후 빅토르 데 사바타가 장기집권하면서 그 명성을 이어나갔으며,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귀도 칸텔리와 같은 젊은 피들이 활력을 부여했다.
1956년 칸텔리의 급사 이후 라 스칼라는 한동안 음악감독을 두지 않고 객원체제로 운영되었다. 1968년 장기간 공석으로 남았던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을 맡게 된 이가 바로 당시 35세의 젊은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였다.
아바도는 무려 18년 동안이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으로서의 라 스칼라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아바도 재임 시의 특기할만한 점이라면 바로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등장이다. 1982년 아바도는 오페라 이외의 일반 콘서트 레퍼토리를 보다 폭넓게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라 스칼라 필하모닉을 출범시켰던 것이다.
1987년 아바도의 뒤를 이어 라 스칼라의 수장이 되었던 리카르도 무티는 전임자가 닦아 놓은 터전을 한층 더 공고히 하였다. 무티의 수하에서 라 스칼라 필하모닉은 전문 콘서트 오케스트라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루체른 페스티벌과 같은 세계적인 음악축제에 단골로 참여하였으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화사절로 세계 각국을 누볐다. 무티와 라 스칼라 필하모닉은 1996년과 2004년 두 차례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명성에 걸맞은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무티는 2005년 단원들과의 불화 끝에 라 스칼라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다니엘 바렌보임이 수석객원지휘자로 긴급 투입되었지만, 지금까지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은 공석으로 남아있다. 라 스칼라 필하모닉 역시 과도체제하에 있다. 하지만 3명의 뛰어난 지휘자들이 라 스칼라 필하모닉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무티 이후의 혼란기를 무난히 수습할 수 있었다. 리카르도 샤이와 다니엘레 가티, 그리고 정명훈이 바로 그 주역들이다.
랑랑의 라흐마니노프 2번을 주목하라
2006년 세 지휘자와 함께 유럽 곳곳을 순회 연주했던 라 스칼라 필하모닉은 올해 9월 정명훈과 더불어 극동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9월 4일 도쿄 산토리홀을 시작으로, 효고, 도쿄, 성남, 서울을 거쳐서 12일 상하이와 13일 베이징을 끝으로 마무리되는 일정이다.
투어의 메인 레퍼토리로 선택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과 말러의 교향곡 1번은 평소 정명훈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교향곡 레퍼토리들이자 이미 다른 악단들과의 수차례의 실연을 통해 충분히 검증을 받았던 작품들인 만큼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우수한 연주력과 함께 만들어갈 시너지에 큰 기대를 걸게 한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우리나라에서 펼쳐질 두 번의 공연에서만 랑랑이 함께한다는 점이다. 일본과 중국에서 예정된 레퍼토리는 협주곡 없이 관현악곡들만으로 채워졌다. 랑랑은 이제 한국 애호가들 사이에서 친근한 이름이다. 이미 네 차례나 내한공연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번 베이징올림픽에 깜짝 출연한 덕분에 비단 음악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익숙한 얼굴과 이름이 되어버렸다.
처음 DG와 계약을 맺을 때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중국시장을 고려한 상업적인 선택이라고 폄하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랑랑은 자신의 뛰어난 재능과 부단한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였다. 그의 과도한 연주 제스처에 대한 비호감이나 해석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그가 뛰어난 재능과 기량의 소유자임을 부정하는 의견은 이제 쉽게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번에 내한공연에서 선택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원래 같은 작곡가의 협주곡 3번이 예정되었지만, 갑작스레 2번으로 변경되었다)은 이미 랑랑이 음반을 통해 선보였던 레퍼토리다. 지난 2003년 DG와의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음악계에 큰 화제를 몰고 왔던 랑랑은 이듬해 이 레이블에서의 3번째 음반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과 파가니니 랩소디를 선택했던 것이다.
발레리 게르기에프/키로프 오케스트라와 함께했던 이 음반은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과한 느낌이 들 정도로 템포를 질질 끌면서 시작되는 1악장 도입부가 단적으로 말해주듯이, 이 음반을 통해 보여준 랑랑의 과도한 감정이입이 꽤나 많은 이들의 거부감을 낳았던 것이다.(Classicstoday.com의 리뷰어 데이비드 허위츠는 10점 만점에 2점이라는 짠 점수를 주면서 ‘밑바닥에 놓인 연주’라고 혹평을 하기도 했었다)
또한 운 나쁘게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레이프 오베 안즈네스, 스티븐 허프, 니콜라이 루간스키 등의 쟁쟁한 경쟁자들의 훌륭한 연주들이 비슷한 시기에 연이어 출시되면서 랑랑의 이 음반은 더욱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더벅머리의 중국 청년은 제법 근사한 패션 감각을 보여주는 세련된 코즈모폴리턴으로 거듭났다.
비록 음반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레퍼토리임에도 이번 내한무대가 기대가 되는 것은 외모의 멋진 변화만큼이나 랑랑의 심미안도 한층 더 원숙해졌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실연을 통해 확인해볼 차례다.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일정 : 9월 9일 8시
장소 :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지휘 : 정명훈
협연 : 랑랑(피아노)
문의 : 031-783-8000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