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9.04 03:12 | 수정 : 2008.09.04 07:26
'음악 신동 1호' 피아니스트 한동일, 3년 만에 독주회
"1946년 가족이 함흥에서 월남한 것도 사실은 저 때문이었어요. 북에 진주한 러시아 병사들에게 피아노를 빼앗기자 아버지께서 '빨리 내려가자'고 결심하신 거죠. 6·25전쟁 중에는 피아노를 칠 곳이 없어서 전차 타고 다니며 선생님 댁에서 1시간씩 연습했어요. 미군 부대에 가면 맘껏 피아노를 칠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장군이 저를 발견한 거죠."
앤더슨 장군은 소년 한동일의 후원을 자청했다. 전국의 미 공군 기지는 물론, 일본 홋카이도와 규슈에서도 순회 연주를 열면서 유학 비용을 마련했다. "연주가 끝나면 미군 모자를 돌리면서 모은 돈이 5000달러쯤 됐는데, 지금이면 수만 달러쯤 하는 큰 금액이었을 거에요."

10여 년이 흐르고 1965년 10월 27일. 한동일은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렸던 리벤트리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고국에 낭보를 쏘아 보냈다. 정경화(바이올린), 백건우·정명훈(피아노)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콩쿠르 신화'의 시작이었다. 그는 "레너드 번스타인(지휘), 루돌프 제르킨·레온 플라이셔(피아노) 같은 쟁쟁한 음악가들이 심사를 맡았다. 번스타인이 '한(Han)'이라고 우승자를 발표한 뒤 저를 안아줄 때는 마치 전기가 온몸에 관통하는 듯했다"며 웃었다.
'음악 신동 1호' '해외 진출 음악가 1세대' '콩쿠르 우승 1호'라는 수많은 호칭이 따라다니는 피아니스트 한동일이 11일 금호아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독주회로는 지난 2005년 이후 3년 만이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과 〈녹턴 작품 9-3〉,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인 32번 등으로 꾸민다.
울산대 석좌교수로 귀국한 그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난 뒤 반세기만에 다시 돌아오니 인생이 한 바퀴 커다랗게 돌고서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그래서 프로그램도 가장 단순하게 짜려고 했다"고 말했다.
최근 임동민·동혁 형제를 비롯해 손열음·김선욱·김준희까지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국제 콩쿠르 입상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닐 정도로 일상사가 되고 있다. '원조 콩쿠르 우승자'인 한동일은 "나는 뉴욕이 어디 있는지, 프로코피예프나 라흐마니노프가 누군지도 모르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세대"라며 "프로펠러에서 제트기를 거쳐 로켓의 시대로 진화한 것처럼 앞으로도 진보의 속도가 얼마나 빠를지 생각하면 가끔은 무시무시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이 너무나 빨라지니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번개처럼 재주 있게 연주하면서도 정작 설 자리는 적어져 아쉽다"고 말했다. "300년 전의 바흐, 200년 전의 베토벤, 100년 전의 라흐마니노프 시절에는 음악 표현에도 더 많은 여유가 있었을 거예요. 혹시 지금은 그 여유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한동일은 "나 역시 젊었을 적에는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적도 있었고, 실수도, 좌절도 많이 겪었다"며 "그렇기에 지금도 '평생 받아야 할 몫보다 더 많은 걸 받고 살았다'고 생각하며 '작게 생각하고, 겸손하고, 사랑으로 대하라'는 말을 가슴에 새긴다"고 말했다.
▶9월 11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02)6303-7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