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8.29 16:06 | 수정 : 2008.08.31 22:17
마흔, 나는 아직도 진한 로맨스를 꿈꾼다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2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도 사극 열풍이 뜨겁다. 그 중심에는 배우 김성령(41)씨도 있다. 최근 종영한 SBS ‘일지매’, KBS ‘대왕 세종’ 두 작품에서 동시에 열연을 펼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그녀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연극 ‘멜로드라마’(9월 5일~11월 12일 서울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로 무대에 올랐다. 지난 8월 22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불혹을 넘긴 그녀는 젊은 시절보다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미스코리아 진(1988년) 출신답게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김씨는 자신도 가끔씩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는 충격적인 발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저도 진한 로맨스를 꿈꿀 때가 있어요. 물론 실현되기는 힘들겠지만 말이에요. 최근 오연수씨가 극중 연하남과 사랑을 나누는 드라마 ‘달콤한 인생’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자기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한국에서는 마흔이 넘은 여자 배우는 엄마 역할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마흔, 쉰에도 멜로물을 찍잖아요. 저도 진한 멜로물을 맡아보고 싶어요.”
그녀는 이 같은 부러움을 이번 연극에서 푼다. 김씨는 극중 일하는 주부 강유경 역을 맡아 연하남과 사랑을 나눈다. “서로는 통속적으로 얽히지만 우리 현실에서 정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저도 친구들과 만나면 그런 얘기를 자주 하거든요. 이번이 앙코르 공연인데 이전에 다른 배우가 출연한 공연을 보고 내용이 너무 마음이 와 닿았어요. 그래서 제작팀에 ‘나도 출연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운 좋게 일정이 맞아서 함께 할 수 있게 됐죠.”
물론 그녀에게 연극 무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1년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로 데뷔했고 이어 TV드라마를 찍었어요. 당시 연출자께서 추천을 해주셔서 연극 ‘여자의 선택’에 출연하게 됐죠. 그 뒤로 ‘베니스의 상인’ ‘아트’ 등에 출연했는데 지금이 가장 떨리네요.”
김씨는 연기는 배우면 배울수록 더 어렵다고 한다. 특히 관객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연극은 무대에 서기 전에 항상 ‘도망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TV드라마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드라마 세트장에 가면 친정에 온 것 같고 편안해요. 하지만 그 안락함이 저를 매너리즘에 빠뜨릴 수도 있겠죠. 반면 연극은 저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면 제 자신이 성장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배우들과 함께 땀 흘리며 연습하고 공연하다 보면 제 연기가 한 계단 상승한다는 즐거움을 갖게 되죠. 드라마 연습 때는 그렇지 않은데 연극 연습을 하면서는 아직도 연기 지적을 받아요. 하지만 그게 너무 좋아요.”
연기 경력이 20년 가까이 되는 중견 연기자에 속하면서도, 아직까지 자신의 연기를 보고 충고해 주는 사람이 좋다고 할 만큼 연기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김씨. 그런데 그녀는 미스코리아 진 수상 후 처음부터 연기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KBS ‘연예가 중계’ 등을 진행하며 MC로 이름을 먼저 알렸다.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당시에는 부모님께 허락 받기 힘들었어요. 호스티스 영화가 많을 때였고, 여배우는 당연히 벗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인하대 항공운항과에 진학해서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반대하셨죠. 그러니 연기를 한다고 하면 반대할 것이 눈에 선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라는 영화는 아버지께 말씀드릴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역할도 아나운서이고, 안성기·신성일·박근형씨 등 쟁쟁한 분들도 출연했거든요.”
이 작품으로 김씨는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연기자로 데뷔했다. 이처럼 첫 배역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대학시절 아나운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취직이 잘 된다고 해서 들어간 인하공전 전자계산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저에게 힘을 준 것이 방송반 활동이에요.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방송인의 꿈도 키워갔었죠. 사실 ‘미스코리아에 선발되면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주변 이야기를 들었고 방송 일을 하고 싶어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간 거예요.”
지금은 사극에서 김씨를 만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첫 사극 ‘조광조’에 출연할 때만 해도 시대극에 어울리는 외모가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조광조’ 이후에는 계속해서 사극 출연섭외가 들어왔어요. ‘사극 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될 정도였죠. 그래도 동시에 두 편은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번에 ‘일지매’와 ‘대왕 세종’을 함께 찍으면서 전국 각지의 촬영장을 돌아다녔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이처럼 활발한 연기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이지만 늘 연기 공부에 대한 갈증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2005년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잠시 활동을 중단한 틈을 타서 경희대 연극영화과에 편입했다. “저는 공채 출신 탤런트도 아니고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연기 공부가 어떤 건지 궁금했어요.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연기를 배워보고 싶었죠.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서 연기, 연출, 조명 등을 배우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좋았어요.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김씨는 살아있는 연기 공부를 위해 쉬는 기간에도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닌다고 했다. “영화 보다는 공연을 자주 봐요. ‘천사의 발톱’의 유준상씨, ‘라디오스타’의 서범석씨 연기를 좋아해요.”
그녀가 연기자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가족들 응원의 힘이 컸다. 1996년 결혼한 남편 이기수씨는 “아내가 하고 싶을 때까지 연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외조를 하고 있다. 이씨는 현재 대리석업체인 ‘코리아 마블’을 운영 중이고 김씨와 함께 부산에 ‘엘로로’라는 레스토랑도 냈다. 또 동생인 SBS아나운서 김성경씨는 든든한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통하는 게 많아요. 서로 고민 상담도 하고요. 특히 작품을 결정할 때 동생이 아주 명확하게 결론을 내줘서 좋아요.”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