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프 대성황-상> 관람객, 왜 이렇게 많이 왔나

  • 김수혜 기자
  • 김경은 기자

입력 : 2008.08.16 10:42 | 수정 : 2008.08.16 10:45

젊은 작가 777명이 한여름 장대비처럼 대한민국을 두들겨 깨웠다. 6일 서울역 구역사(舊驛舍)에서 개막한 《아시아프》(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축제)가 휴관일인 11,12일을 빼고 15일까지 누적 관람객 숫자 4만1366명을 기록했다.

《아시아프》 참가작가 777명은 아시아 각국의 미대 및 대학원에 재학 중이거나 30세 이하인 청년들이다. 절대 다수가 아직 시장과 평단에 이름을 알리지 않은, 새파란 신예들이다. 이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아시아프》가 진행된 여드레 동안 하루 평균 5170명이 서울역 구역사를 찾았다.

열기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관람객 누계가 죽순이 자라듯 쑥쑥 불었다. 1부가 개막한 6일부터 수·목·금 사흘간 9739명이 다녀갔다. 이어지는 주말 이틀간, 입소문을 들은 관람객 1만3188명이 밀려왔다.

주최측은 이틀간 휴관하고 그림을 교체한 뒤 13일 2부를 개막했다. 이번에는 수·목·금 사흘간 1만8439명이 들이닥쳤다. 특히 2부 개막일인 13일에는 오전 8시부터 관람객들이 땡볕에 줄을 서기 시작해, 개장 직전인 오전 11시에는 서울역 구역사에서 광장을 가로질러 KTX 승강장 앞까지 수백m에 걸친 인간 띠가 형성됐다.

대한민국 미술 애호가들은 대체 왜 젊은이들의 작품에 이토록 열광했을까? 《아시아프》는 한국 현대미술의 저변을 넓히려는 공익 행사다.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아트페어’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주최측은 비용만 대고 수익을 올리지 않는다. 이에 따라 2300점 중 1367점이 100만원 이하에 판매됐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포함해 국내 정상급 평론가, 교육자, 큐레이터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아시아 각국에서 밀려든 2050여 명의 응모자 가운데 777명을 엄선했다. 이어 한국화랑협회에서 추천한 베테랑 미술시장 전문가들이 작품 가격을 매겼다. 

수준 높은 작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뉴스에 문화에 목마른 대중이 열광적으로 호응했다. “집에 복제품이 아닌 진짜 예술품을 걸고 가족과 함께 즐기고 싶다”는 욕구, “유망주의 작품을 구입해 즐겁게 감상하고, 훗날 가격이 오르면 재테크까지 된다”는 발상이 관람객을 전시장으로 끌어당겼다. 그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보자.

김수연(여·43·개인병원 직원·서울 이문동)씨

“1부 전시를 보고 온 직장 동료가 도록을 보여주면서 ‘작품 2점을 샀다’며 ‘정말 괜찮은 전시니까 꼭 가보라’고 추천했어요. 별다른 기대 없이 도록을 펼쳤는데 눈에 쏙 들어오는 그림이 10여 점 있었어요. 그래서 2부 개막에 맞춰, 맨 먼저 들어가려고 오전 9시부터 줄을 섰어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입해서 거실에 걸어두고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감상하고 싶어요. 젊은 작가들이니까 ‘가능성’을 보고 그림을 구입하는 거죠.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작가가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얼마나 발전하고 성장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최진태(45·의사·서울 평창동)씨

“땡볕에서 줄 서는 기다림조차 설레고 즐거워요. 다녀온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조금만 늦게 가도 마음에 드는 그림을 못 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달려와서 1등으로 섰어요. 먼저 다녀간 동료가 도록을 가져왔는데, 병원 직원들끼리 쉬는 시간마다 모여 앉아 그림을 보며 ‘나는 이 그림이 마음에 드네’ ‘이 작가는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하고 의견을 나눴어요. 각자 취향이 달라서 더 재미있었어요 마음에 와 닿는 그림은 인터넷 홈페이지(asyaaf.chosun.com)에 들어가서 크게 확대해서 봤어요. 공부를 한 느낌이에요. 병원에 걸어두고 환자들과 함께 보고 싶어요.” 

김문정(여·54·주부·용인 성복동)

“아파트 거실에 걸고 싶어서 개막 시각에 맞춰 아침 일찍 버스 타고 왔어요.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일반인도 마음껏 그림을 보고 구입도 할 수 있다고 해서 왔어요. 전문가들이 엄선한 작품이라고 해서 더 믿음이 갔고요. 와서 보니 그림이 하나 같이 신선해요. 젊은 학생들이라 그런지, 배운 것을 그대로 쏟아 부었다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난생 처음 10만 원짜리 유화 한 점을 샀어요. 10만 원은 싸면 싸고 비싸면 비싼 가격이지요.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비싼 돈을 주고도 집을 꾸미는데, 예술 작품을 걸 수 있으니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실에 걸어놓고 매일 보며 가족처럼 함께 살 계획이에요.”

김영혜(여·75·주부·성남 태평동)씨

“2층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마음에 드는 작품을 봤어요. 선명하고 화려한 색감이 와 닿았어요. 마음 속에서 ‘이거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생전 처음이에요. 이제까지 남들이 그림을 산다고 하면 왠지 세파에 휩쓸려 재산을 불리려는 행동으로만 보였어요. 막상 와보니 예상 보다 그림이 훨씬 다양해서 놀랐어요. 막 피어나는 작가들의 작품을 사는 거니까 돈을 불리려 한다는 오해를 사지도 않고, 그림도 즐기면서 젊은이들도 도울 수 있으니 정말 뿌듯해요. 앞으로 1~2년에 한 점씩 그림을 사볼까 해요.”

채정옥(여·47·주부·서울 잠실동)씨

“대학교 1학년짜리 딸과 함께 1부, 2부를 모두 봤어요. 1부는 색감이 화려한 작품이 많았어요. 동양화는 고급스럽고, 서양화는 화사했어요. 일상생활을 묘사한 그림이 많아서인지 친근하고, 이해하기 편했지요. 2부는 좀 더 성숙하고 과감한 느낌이에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이 많아서, 그림 앞에서 ‘이게 뭘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동양화 기법으로 코끼리를  그린 그림을 보고 ‘아이디어가 기가 막힌다’고 생각했어요. 1부는 개막 이틀째에 왔는데, 마음에 드는 그림이 이미 다 팔리고 없더라고요. 2부 때에는 생활비를 아껴서라도 그림 한 점은 꼭 사고 말리라 생각하고 왔는데, 역시 마음에 드는 건 팔렸네요. 그래도 딸과 둘이서 오붓이 그림산책을 할 수 있으니 이것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