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에 울려 퍼진 '한국의 북소리'

  • 베이징=박돈규 기자

입력 : 2008.08.16 02:40 | 수정 : 2008.08.16 07:19

국수호 디딤무용단 '천무' 베이징올림픽 초청공연

《천무》(天舞)는 지름 2m짜리 북을 힘차게 쿵, 두드리며 열렸다. 나머지 큰 북 두 개와 작은 북 20여 개, 소고와 장구들이 이 고동 소리를 받았다. 가락이 여러 번 바뀌었고, 같은 가락 안에서도 강약과 템포로 흥이 달라졌다. 30여명이 양손에 북채를 들고 한 호흡으로 치는 동작, 하늘로 치솟았다가 수직 하강하는 북채 자체가 춤이 됐다. 북 하나를 놓고 4명이 돌며 두들길 땐 붉은 치맛자락이 날렸다. 한국의 북이 만들어낸 무늬였다.

건국 60년을 축하하는 북소리가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에서 울려 퍼졌다. 국수호 디딤무용단이 15일 밤 자금성 내 중산음악당(1400석)에서 《천무》를 공연했다. 중국 황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이 거대한 궁(72만㎡)에서 한국 공연이 펼쳐지기는 처음이다. 국수호 디딤무용단은 한국 공연단체로는 유일하게 베이징올림픽 기간 문화행사에 초청됐다. 중산음악당은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스리 테너'가 노래했던 무대다.
15일 중국 베이징 자금성 내 중산극장에서 한국 국수호 디딤무용단이《천무》를 공연하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천무》는 〈북의 대합주(天鼓大合奏)〉를 비롯해 안무가 국수호가 지난 30여 년 동안 만든 작품들 중 하늘과 관련된 13편을 재구성한 공연이다. 그 가운데 7편은 북이 들어가는 춤이었다. 무용수들은 중간중간 "얼~쑤!" "합!"을 내뱉으며 리듬을 가다듬었고, 관객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소리를 보탰다. 1980년대에 선보인 〈북의 대합주〉는 국수호 북춤의 핵심답게 하늘에 고하는 인간의 의지, 맥박과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비조의 춤(飛鳥舞)〉은 여백의 미학을 보여줬다. 머리에 긴 깃털을 달고 나온 남자 무용수 한 명이 붉은 조명과 연기(fog) 속에서 극도로 절제된 춤을 췄다. 무대는 화려하고 관능적인 여성 무용수들이 장구를 액세서리처럼 쓴 〈기악천무(伎樂天舞)〉, 남자 다섯과 북 다섯이 만나 조합과 변주의 재미를 뽑아낸 〈구정놀이(朝男鼓舞)〉 등으로 이어지며 객석을 압도했다. 북을 팼다가 어르고 달래는 솜씨가 돋보였다.

공연은 100분 동안 자금성을 두드렸다. 부채와 바람, 작은 북이 어우러진 〈요령고무(天神鈴鼓)〉로 열린 2막은 한 덩어리로 군무를 추며 북을 두드리는 〈땅의 혼(地之魂)〉으로 마무리됐다. 〈비천무(飛天舞)〉는 손 움직임에 주술성이 강했고 〈천화(天和)〉에서는 무용수들의 한복 의상까지 너울너울 춤췄다. 땅을 딛고 사는 인간의 기운을 하늘로 밀어 올린 장면들은 올림픽의 화합 정신, 장이머우(張藝謀)가 연출한 개막식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콘셉트와도 통했다. 중산음악당의 울림도 넉넉했다.

국수호는 "건국 60년이 되는 날, 중국의 자존심 자금성에서 한국인의 몸짓과 소리를 전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비천무〉 〈기악천무〉 〈요령고무〉 등은 고구려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춤은 물론 의상과 소품까지 사료를 통해 복원한 것이다.

베이징올림픽 개·폐막식 부감독 장지강(張繼鋼), 개막식 식전행사에서 조선족 춤을 안무한 이승숙,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이날 공연을 봤다. 관객 첸원링(陳文令)씨는 "북의 크기와 리듬, 춤과 의상이 어울린 환상적인 무대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