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많은 스승, 욕심 많은 제자 한무대에

  • 김성현 기자
  • 김명교 인턴기자·고려대 언론학부 4년

입력 : 2008.08.09 04:41

'師弟 콘서트' 여는 테너 신영조·김우경

남다른 아픔이 많았던 스승도, 유달리 욕심이 많았던 제자도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테너 신영조 교수(한양대·64)와 지난해 '세계 오페라의 1번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메트)에서 주역으로 데뷔한 테너 김우경(31)이 '사제(師弟) 콘서트'에 함께 선다. 오는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신영조와 젊은 그들의 노래〉 무대다.

스승인 신 교수는 장충고 2학년 때까지 야구부에서 좌완 투수로 뛰었다. "던지기를 해도 언제나 오른손보다 왼손 기록이 좋았죠. 선수 생활을 계속 했으면 백인천(전 롯데·삼성 감독) 씨와 동기였을 거에요."

고교 시절 어깨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신 교수는 잡음 섞인 A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음성에 매혹됐다.

"작곡을 하고 싶었지만, 막상 가운데 C음도 제대로 몰랐으니 할 수가 없었죠. 학교 선생님께서 제 목소리를 듣더니 대신 성악을 권유하셨어요."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사제 무대에 함께 서는 테너 김우경(왼쪽)과 스승 신영조 교수.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한양대 음대에 진학했지만 출발이 늦었기 때문인지 도중에 음악을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도 많았다. 대학 2학년 때는 자원입대했다. 군 제대 후에 다시 노래에 도전했지만, 무리한 연습 탓에 성대에 혹이 생기고 말았다. 뚜렷한 수술 방법도 없었고 휴식이 유일한 치유법이었다.

"꼬박 1년 반 동안 한 소절도 노래할 수 없었죠. 수업 시간에 앉아있어도 괴롭기만 했고…." 신 교수는 "가장 힘든 기간이었지만, 소리를 내고 싶어도 참는 법을 그때 배웠다"고 했다. 신 교수는 완치 후 1970년 뒤늦게 독일 뮌헨 음대로 유학을 떠났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 극장 독창자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뒤늦게 성악의 꽃을 피웠다.

그런 스승이었기에, 끝없는 노래 욕심을 보이는 제자가 더 특별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성악가는 목소리가 악기잖아요. 다른 학생들은 감기 몸살로 한 학기에 적어도 1~2번쯤은 수업을 빠졌지만, 우경이는 4년 내내 한 번도 결석이 없었어요. 대부분 수업 40분이 지나면 준비해온 곡이 모두 끝나는데, 우경이는 50분을 꼬박 채운 뒤에도 그 때부터 다시 2~3곡을 더 부르겠다고 고집하는 거에요."

대학 시절 김우경은 하루에 셔츠 6장씩 준비해서 학교 연습실 문을 걸어 잠그고 노래했고, 온통 땀에 젖으면 다시 셔츠를 갈아입으며 연습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우경은 "노래를 많이 배우고 싶은 욕심에 다음날 성악 수업만 있으면 아무리 중요한 약속이 있어도 취소하고 일찍 잠을 청했다"고 했다. 잠이 부족하면 제대로 고음(高音)을 내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김우경은 지난해 뉴욕 메트 120여 년 역사상 한국 남녀 성악가로는 처음으로 소프라노 홍혜경과 함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주연을 맡았다. 오는 10월에도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홍혜경과 《라 보엠》의 남녀 주역을 함께 맡는다.

김우경은 "언제나 스승은 '지금 당장은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33년 뒤 내 나이까지도 노래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성숙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그러자 신 교수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훌쩍 커버릴 줄은 몰랐지…"라며 웃었다.

신 교수는 21일 무대에서 〈초혼〉 〈산〉 같은 가곡을, 제자 김우경은 푸치니의 《라 보엠》 가운데 〈그대의 찬 손〉과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가운데 〈아름다운 초상이여〉 등을 부른다. 2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02)780-5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