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하나로" 삼중주 울려퍼지다

  • 도쿄=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8.04 06:02

韓·中·日 연주자 '수퍼 실내악 트리오' 공연
정명훈 피아노, 지안 왕 첼로, 카지모토 바이올린
도쿄서 환상적인 무대… 함성과 기립박수 쏟아져

음악에는 국경이나 분쟁이 없었다. 한국·중국·일본을 대표하는 연주자 3명이 '수퍼 실내악 트리오'를 결성했다. 정명훈(피아노), 지안 왕(첼로), 다이신 카지모토(바이올린)는 지난달 29일과 30일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필하모닉 공연에 이어 1일 일본 도쿄의 산토리홀에서 협연 무대를 가졌다. 이들은 내년에도 한·중·일을 순회하는 실내악 콘서트를 갖고 음반도 녹음하는 등 트리오로 활동할 예정이다.

1일 도쿄 산토리홀에서 열린 아시아필하모닉 연주회 1부에서 이들은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을 협연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첼로가 실내악적 교감을 나누면서 오케스트라와 독주 악기들이 어우러지는 협주곡의 묘미를 동시에 안기는 작품이다.

지휘자이자 피아노 연주를 맡은 정명훈은 평소처럼 서서 지휘하는 대신 객석과 등을 돌리고 뚜껑 없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까지 지휘하는 '1인 2역'을 소화했다. 건반으로 손이 바쁠 때는 고갯짓과 눈빛으로 악단과 사인을 주고 받았다.

첼로 독주에 이은 3악장에서 흥겨운 무곡으로 곡의 표정이 바뀌자 오케스트라의 속도감과 트리오의 앙상블 모두 절정으로 치달았다. 세계 유수의 명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 단원들이 모여서 구성한 아시아필하모닉이 연주를 맡았기에 독주자부터 지휘자·단원까지 모두 '아시아의 하모니'가 된 셈이었다.
일본의 다이신 카지모토(바이올린₩왼쪽부터), 중국의 지안 왕(첼로), 한국의 정명훈(피아노)이 1일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아시아 필하모닉과 베토벤의〈삼중 협주곡〉을 협연하고 있다. 정명훈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지휘를 하기 때문에 객석과 등지고 있다. /CMI 제공
한국 관객이 뜨겁고 열정적이며 젊다면, 일본 관객은 온화하고 끈기 있으며 저변이 탄탄했다.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 같은 레퍼토리를 연주했기 때문에 객석의 분위기도 비교 감지할 수 있었다. 3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콘서트에서는 2부 말러 교향곡 5번이 끝나기 무섭게 '브라보'를 외치는 함성과 함께 기립 박수가 일었다. 지휘자 정명훈은 일일이 단원들을 소개한 뒤 관객들을 일으켜 세우는 특유의 제스처를 선보였다. 반면 1일 산토리홀의 일본 청중은 아시아 필 단원들이 모두 악기를 챙겨서 나갈 때까지 객석을 떠나지 않고 10분여 간 계속 박수를 보내는 정겨운 풍경을 연출했다. 시카고 심포니의 악장으로 아시아필하모닉 악장으로 참여한 대만계 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 첸은 "한국 관객들이 정열적이라면 일본 관객은 절제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협연을 시작으로 정명훈, 카지모토, 지안 왕은 트리오로 계속 활동할 계획이다. 카지모토는 지난해 1월 일본 나루히토 왕세자와 정명훈과 함께 실내악을 연주했으며, 정명훈이 지휘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했다. 그는 "평소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등을 녹음하며 요요 마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로 꼽히는 지안 왕도 "아시아에는 훌륭한 연주자도, 좋은 홀도, 뛰어난 관객도 있다. 이제는 음악을 통해 서로 가까워질 차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