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에 밴 관(官)냄새부터 없애야"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7.28 03:19

예술의전당 신홍순 신임 사장

신홍순 예술의전당 신임 사장
"첫 출근하던 날, 경비대장이 승용차 문을 열어주더니 계단까지 따라 올라오며 수행해줍디다. 인사는 90도로 하고, 가방까지 받아주려고 했습니다. 사흘간 했더니 내가 먼저 불편해서 계단 아래에서 (수행을) 끝내자고 했습니다."

민간 기업 CEO 출신으론 처음으로 예술의전당 사장에 취임한 신홍순 신임 사장이 25일 첫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LG상사 반도패션 사장 출신의 신 사장은 "모두 넥타이 풀고서 시작하자"며 자리에 앉은 뒤,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예술의전당의 관료성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출근한 지 10여 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부 기관(정부)이 있고 20년간 영향을 받다 보니 경직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신 사장은 또 "예전부터 관객으로 자주 왔는데 막상 출근하고 보니 건물부터 관(官) 냄새가 나고 위압감이 확 든다. 나부터 예전보다 기가 팍 죽었다"고 말했다.

반도패션 시절 '마에스트로' '티피코시' 등의 인기 브랜드를 출시했던 신 사장은 "예술 기관은 감성적이라는 점에서 패션과 비슷하지만 상품을 손으로 만질 수 없다는 점에서는 훨씬 더 정신적"이라며 "사고 방식부터 유연하게 하고 자기 주관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2명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일을 해야 한다"며 ▲책임 경영제 강화 ▲중장기 계획 수립 ▲관객 만족 시스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최소한 3년 앞을 내다보고 미래지향적으로 공연·전시 계획을 수립해서 졸속 공연을 막겠다"고 말했다.

신 사장은 "CEO 출신이 오면 '이익을 많이 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중요한 건 수익성보다는 자립도라는 점을 알게 됐다. 예술에 대한 후원을, 그것도 큰 덩어리의 돈을 유치하는 일이 재임 기간 중에 가장 큰 걱정거리이자 희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 《라 보엠》 공연 도중 일어난 화재 사건과 관련, 그는 "전당 사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 오는 12월까지 복구 공사를 끝내고 보완 기간을 거쳐 내년 3월에는 정식 오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2월 첫 공연 작품으로는 연말쯤 인기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생각 중이라고 했다.

신 사장은 "부모님께서 결혼 9년 만에 낳은 자식이라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6~7세 때부터 선친의 손을 잡고 명동 시공관에서 지휘자 임원식 선생의 연주회를 빼놓지 않고 보러 갔고, 고 1때부터는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에 다녔다. 어릴 적 경험이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