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중독된 행운… 파멸의 비가(悲歌)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07.17 03:11 | 수정 : 2008.07.17 05:41

뮤지컬 '갬블러'

깨진 스페이드(♠) 모양의 무대막이 열리면 카지노다. 카지노 보스(허준호)는 "행운은 예리한 이빨을 갖고 있죠/ 그러니 조심, 아니면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이날 처음 카지노에 온 청년(이건명)을 놓고 관객과 게임을 벌인다. "그냥 보기만 할 거예요. 도박은 안 해요"라고 말하는 이 청년은 과연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인가 할 것인가. 카지노는 "그저 그냥"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 승부는 뻔하다.

뮤지컬 《갬블러》(연출 임영웅)가 곧바로 무대에 밀어넣는 안무는 몽환적이다. 반복의 최면술 같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이 뻣뻣하게 한 덩어리로 움직인다. 이 순간 흘러나오는 노래는 "절대로 게임은 끝나지 않아요/ 운명을 걸었으니까"다. 관객은 행운의 '예리한 이빨'에 물릴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다. 계단에 누운 채 등장하는 쇼걸들은 섹시한 포즈로 "원하면 가져요/ 불태울 거예요~"를 부르고, 청년은 한 쇼걸(배해선)에 반해 갬블러가 되기로 결심한다.

고급스러우면서 대중적인 음악(작곡 에릭 울프슨)은 여러 차례 박수와 환호성을 불렀다. 허준호와 이건명이 1막에서 "내 꿈을 펼치리라/ 세상이 내 발 아래/ 그 골든키"로 끝나는〈골든키〉를 불렀을 때 객석의 반응은 최고조에 올랐다. 이어진 배해선의 독창 〈라임라이트〉는 감정이 잘 뭉쳐져 있었고 전율이 일 정도로 힘찼다. "그 오랜 기다림 끝난 뒤 난 모두 보여주리라/ 라임라이트, 온 세상에 날 비춰주리라…."
《갬블러》는 푸슈킨의 단편소설〈스페이드의 여왕〉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이다. 사진 가운데가 카지노 보스 역의 허준호. /신시뮤지컬컴퍼니 제공
쇼걸 오디션으로 열리는 2막은 여장(女裝)한 김호영의 원맨쇼가 갈채를 받았다. 이 비극에 대한 거부반응을 누그러뜨릴 만큼 좋은 희극 리듬이었다. 허준호는 에너지 넘치는 카리스마로 매력적인 악역을 빚어냈지만 발음과 가창력은 거칠었다. 백작부인 역의 전수경은 존재감이 약했다. 마지막 곡으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타임〉을 골라 여러 겹 여운을 남길 듯했던 《갬블러》는 예상을 피해갔다. "팡!" 이 카지노의 폐장을 알리는 총소리였다.

▶8월 3일까지 LG아트센터. (02)577-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