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대학로 지상과제는 "98분 동안 웃겨라"

  • 박돈규 기자
  • 임지영 인턴기자(중앙대 국문4)

입력 : 2008.07.17 03:13 | 수정 : 2008.07.17 05:37

대부분 소극장 여전히 연극이 주류
비극·실험극 감소 유난히 두드러져

2008년 여름 대학로 연극은 '98분 길이의 코미디'가 대세였다. 조선일보 공연팀이 7~8월 대학로 103개 극장에서 공연 중이거나 공연할 104편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104편 중에는 연극이 64편, 뮤지컬 23편, 아동극(가족뮤지컬 포함) 17편이었다. 관객과 매표액에서 뮤지컬이 연극을 추월한 지 오래지만, 100~200석 소극장이 대부분인 대학로에서는 여전히 연극이 주류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극을 장르별로 세분하면 코미디(희극)가 36편으로 전체의 56%에 달했다. 로맨틱 코미디, 풍자 코미디 등 가벼운 재미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방증이다. 드라마(희극도 비극도 아닌 대중극)가 16편, 공포물 6편, 실험극이 5편이었고 비극은 지난 13일 폐막한 《세일즈맨의 죽음》(연출 김성옥) 한 편뿐이었다. 올 여름 심야 공포 연극은 《The 죽이는 이야기》 《혼자가 아니다》 등 지난해보다 두 배 많은 6편이 '반짝 특수'를 누리고 있다.

장르별 러닝타임은 연극이 평균 98분, 뮤지컬 108분, 아동극은 61분이었다. '연극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100분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대학로의 불문율이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투비컴퍼니의 이봉규 대표는 "객석 환경이 열악한 소극장들이 많아 관객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라며 "연습 과정에서 100분 안쪽으로 러닝타임을 맞춰달라는 주문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16일 개막한 4시간30분짜리 연극 《원전유서》(김지훈 작·이윤택 연출)는 그 트렌드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남달리 주목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대학로에서 장기공연 중인《휴먼 코메디》.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배우들의 희극 리듬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제공
'리포트 관객'이 없는 7~8월은 전통적으로 작품성을 추구하는 연극이 드물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조사 결과 비극과 실험극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연극평론가 김명화씨는 "비극은 거대한 힘과 싸우다 나락에 떨어지지만 그래서 더 숭고해지는 영웅의 이야기"라며 "하루를 위로 받고 싶어하는 관객은 비극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김방옥 동국대 교수는 "현대연극은 희극과 비극의 경계가 모호해져 구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요 몇 년 사이 실험극의 격감은 "과거와 달리 무보수로 참여하는 배우들이 거의 없고 관객 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코미디 중에는 《라이어》 《휴먼 코메디》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처럼 상설공연을 하는 히트작이 늘고 있다. 공연의 소재는 연인의 사랑, 사회 풍자, 가족애 등이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 《드로잉 쇼》, 기러기 아빠가 주인공인 《어항 속 기러기》, 굿 같은 실험극 《맥베드》가 눈에 띄었다. 뮤지컬은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였지만 아동극의 경우 유괴 예방, 경제 교육, 환경, 클래식 음악 등 재료가 다양했다.
7~8월 103개 극장 本紙 조사 결과

연출가 오태석은 "평소에는 몰랐던 머릿속 빈 방을 발견하게 해주면서 생각의 폭과 깊이를 넓혀주는 연극"을 '좋은 연극'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연극을 소비하는 관객의 입장은 엇갈렸다. 최은주(26)씨는 "대학로 연극이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장르 편중 때문에 선택권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고, 김나래(24)씨는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연극이 대중화되고 접근성이 높아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