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의 컬처읽기21] 루마니아의 작은 도시 크라이오바의 저력

  • 성남아트센터 월간 아트뷰

입력 : 2008.07.16 09:17

소도시 국제예술제가 가야 할 길

두 해 전 <엘렉트라>를 가지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참가했던 루마니아의 대표적인 연출가 미하이 마이니치우와 얘기를 나누던 가운데 “아, 그랬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는 명쾌한 해답을 찾았다. 이 기적 같은 기획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어쩌면…”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요지인즉슨 크라이오바가 아주 작은 도시라서 공연예술 분야 간의 경쟁이 없고 모든 문화예술 예산을 이 격년제의 행사 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축제는 크라이오바 셰익스피어재단이 기획·운영하고 있는데, 루마니아의 한 작은 시골에 셰익스피어재단이 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거니와 이 재단에 그 엄청난 기획권과 예산권을 시 정부가 과감하게 부여했다는 사실도 참 신선했다.

한국의 경우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비롯한 의정부, 안산, 과천, 거창, 수원, 춘천 등 크라이오바와 인구가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도시에서 대체로 비슷한 성격의 국제연극제들을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를 제외하면 규모도 비슷하고, 작품도 비슷하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같은 해외초청작이 이곳저곳을 순회 공연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크라이오바만큼 획기적이며 역사적인 기획력을 증명하지 못한다. 요컨대 축제의 정체성이 일반적이고 평범하다. 격년제의 축제가 좋은 이유는 좀 더 많은 작품 가운데서 좀 더 우수한 공연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회계법이 격년제 사업을 어렵게 만드는 것도 수월성을 방해하는 장애임이 틀림없다.


특정 분야에 예산 집중해 경쟁력 강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가 크라이오바의 국제 셰익스피어연극제를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국제연극제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음악이면 음악, 무용이면 무용, 연극이면 연극 등 특정한 장르의 한 분야에 문화예술 지원예산을 집중함으로써 지역마다 국제적인 예술제를 매년 또는 격년제로 개최할 수 있다면 우리도 지금처럼 많은 무명의 국제예술제로 막대한 예산을 소모하는 대신 분야별로 세계적인 국제예술제를 개척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면 문화의 세기를 맞아 한국의 문화예술 진흥은 물론 문화산업의 발전에도 훨씬 의미 있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의 문화예술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시기를 훨씬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국의 교육, 경제, 정치, 산업 등 모든 분야에 만연된 고질적 병폐 가운데 하나가 백화점식 사고방식이다. 특화보다는 일반화를 지향한다. 전문성보다는 평등성을 강조한다. 개별성보다는 전체성을 추구한다. 특화, 전문성, 개별성이 없는 애매한 정체성 때문에 최고를 이루는 대신 최고를 모방하기에 바쁜 것이 우리의 정치외교요, 그것이 우리의 사회의 인사정책이다.

우리의 예술현실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다. 정치를 위해서 대중적 사업을 무수히 개척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지자체가 둘씩 셋씩 연합하여 순번제로 특정 분야의 아시아 예술제, 국제 예술제를 좀 더 규모 있고 알차게 개최한다면 한국은 최소한 아시아의 문화 중심임을 자타로부터 공인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사정이 나날이 나빠지는데 우리의 국제예술제 예산도 통폐합을 통해서 좀 더 경쟁력 있게 경제적으로 기획해야 할 때가 이미 당도했다.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때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