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상차림] 예술로 승화된 서커스, 시·청각이 어우러진 감동

  • 김수혜기자
  • 박돈규기자

입력 : 2008.07.14 03:37

몸의 극한에 가까운 묘기들을 예술적으로 이어붙인 서커스 《네비아》, 바흐의 본고장에서 바흐를 들려주는 〈라이프치히 바흐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우리 앞에 놓인 세상과 인생과 사물을 전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주는 전시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전》, 최악에 처한 주인공들이 위로를 주는 소설 《최악》. 조선일보 문화부가 월요일 아침 배달하는 '문화 상차림' 이번 주 메뉴입니다.


서커스


두 갈래 끈에 매달린 채 펼치는 수직 낙하, 가는 막대기 위에서 물구나무로 버티는 균형감, 공중에서 몸을 '일(一)' 자로 포개는 곡예…. 《네비아》(Nebbia)는 중력과 관성을 거부하면서 교묘히 이용했다. 음악과 조명은 비주얼을 강화시켰다. 한 곡예사가 연체동물처럼 몸을 뒤틀 때 객석 반응에는 감탄과 불쾌감이 섞여 있었지만, 장면과 장면을 이어주는 광대극은 부드러웠다.

도넛 모양의 안개를 쏘아올리는 대포, 날아다니는 작은 공들, 줄넘기 같은 소재로 동심을 건드렸다. 수천 개의 코르크 마개를 떨어뜨리는 소나기 장면 등 시·청각 효과를 결합시킨 대목이 많았다. 막대기들 위에서 접시 100개가 돌고 있고 연인들이 뛰어다니는 갈대숲 장면이 가장 아름다웠다. 이 서커스 연출자는 토리노 동계올림픽 폐막식을 연출한 다니엘 핀지 파스카다.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544-1555

《네비아》에서 막대기 위에 접시를 올려놓고 돌리는 장면. 안개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크레디아 제공

클래식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타계할 때까지 27년간 몸담았던 독일의 라이프치히는 '바흐의 본고장'이라는 자존심으로 가득한 도시이기도 하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소속의 20여 개 앙상블 가운데 하나인 〈라이프치히 바흐 오케스트라〉가 바흐의 곡으로 이틀간 내한 무대를 갖는다. 첫날인 16일 예술의전당에서는 바흐의 〈쳄발로 협주곡〉을 일본의 미녀 기타리스트 무라지 가오리와 기타 편곡으로 협연하며, 둘째 날인 17일 같은 곳에서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6곡)을 들려준다. 대중성으로는 첫날 공연을, 음악적 순도로는 둘째 날 공연을 고를 만하다. (02)599-5743

라이프치히 바흐 오케스트라. /빈체로 제공

전 시


한 가지는 확실하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전》에 가면 전에 안 하던 생각을 잔뜩 하며 나오게 된다.

이 전시는 국내외 20~30대 작가 20명의 작품 40여 점을 모은 것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가령 구성연씨는 매화나무 가지에 꽃송이 대신 팝콘 수백 개를 붙인 다음, 옛 선비들이 먹으로 매화를 치던 구도를 빌려 정물사진을 찍었다. 구씨는 먹과 매화 자리에 카메라와 팝콘을 들이밀고 "이로써 팝콘은 품위를 얻고, 매화는 명랑하게 되었다"고 흐뭇해한다.

차상엽씨의 〈나비 인간〉은 어둑한 벽에 유선형 날개의 천사가 어른거리는 설치작품이다. 이 몽환적인 그림자의 실체는 간단하다. 유리컵, 목봉, 철사를 탁자에 놓고 전기 스탠드를 비춘 것이다. 구도(求道)에 관심 깊은 관객은 탁자 위의 사물이 '현실'을, 벽 위의 그림자가 '초월'을 상징한다고 해석할지 모른다. 시니컬한 관객은 반대로 "초월은 환상일 뿐"이라고 유쾌하게 웃어넘길 것 같다. 전시는 31일까지. (02)736-4371

차상엽씨의 설치작품〈나비인간〉. 2007년작. /사비나미술관 제공
문 학

이야기책으로서 소설을 집을 때 독자들의 기대는 반전, 역전, 재미, 감동, 교훈 같은 것일 수 있다. '휴머니티를 비수처럼 품고 사람들을 웃겨준다'는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장편 《최악》(북스토리)을 읽으면 플러스 알파가 있다. 일종의 위로 같은 것이다. 기계 부품의 말단 공정을 담당하는 영세 철공소 사장님(47세), 월요일과 월말과 비 오는 날이 지독히 싫은 은행원 아가씨(23세), 집 없는 떠돌이가 되어 파친코 벌이와 버터플라이 나이프 한 자루로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 같은 삶을 살아가는 키다리 젊은이(20세)가 주인공들이다. 경제도 사랑도 인생도 최악으로 치달아 결국 은행강도짓을 해야 하는, 브레이크 없는 내리막길 삶들이 전개된다. "실감나는 스토리, 시원시원한 전개, 극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잠시도 쉴 틈 없이 독자를 사로잡는" 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606쪽, 1만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