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7.11 09:45
[인터뷰] 뮤지컬 배우 '오만석'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너무 일찍, 너무 많이 알아버린 34세의 배우라면. 일찍이 공연 무대에서 주연을 압도하는 조연으로 두각을 보이며 시어터 고어들의 스타로 등극하던 그는 2000년 연극 '이(爾)'의 ‘공길’을 맡으며 스포트 라이트를 모았다. 뒤이어 영화 '왕의 남자'가 기록적인 히트를 기록하자 원작이었던 연극'이'는 3회에 걸쳐 재공연 무대에 올려졌고 사람들은 영화의 ‘공길’만큼 연극의 ‘공길’을 궁금해 했다.
그 사이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인당수 사랑가''그리스''사랑은 비를 타고''헤드윅'등, 히트작들이 오만석이라는 이름 석 자를 호위했고 그는 어느새 대한민국 공연계 대표 주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영화 '수''우리 동네'와 TV드라마 '신돈''포도밭 그 사나이''왕과 나'를 통해 대중적인 친화력까지 검증받은 오만석에게 이제 장르 간 크로스오버는 너무나 익숙하고 능란해 보인다.
“다른 장르를 오가는 게 아직도 자유롭지만은 않아요. 아마 평생 그런 날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두루 섭렵하다보니 상호 보완적으로 응용하는 건 있어요. 무대에서 배운 걸 TV, 영화에서 써먹기도 하고 TV에서 배운 것을 무대에서 차용하기도 하구요. 그것들을 적절히 배합하면 상투적이지 않은 그 무언가가 나오더라구요.”
붉은 핏줄이 선명한 흰자위에 피곤함이 덕지덕지 앉아있는데도 엷은 미소를 드리울 수 있는 그 속내가 궁금했다. “'내 마음의 풍금'팀이랑 MT를 갔다가 오늘 새벽에 돌아왔어요. TV드라마 '왕과 나'마친 다음에는 친해진 후배들이랑 동남아의 코타키나발루에 다녀왔고 체코 프라하에 공연 관람 겸 다녀왔죠. 얼마 전, 중국 하이난에 딸 아이를 데리고 아는 형들과 함께 다녀 왔구요.” 콧구멍에 바람들만큼 쏘다닌 것 같은 데에도 영 아쉬운 표정이다. “여행을 정말, 정말 좋아하거든요. 더 다녀야 하는데….”
알려진 대로 엄청난 축구광인 그는 운동이건, 공연이건 다른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작업의 즐거움에 전율한다. 만나서 눈빛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고 고민을 함께 하는 소소한 시간이 이끼처럼 쌓여 팀웍이라는 커다란 힘을 만들어낸다는 걸 몸으로 체득한 지 오래다.
그러고 보니 목전에 닥친 공연도 공동의 무대였다. '헤드윅'의 탄생 10주년을 기념한 '헤드윅 콘서트'를 위해 연출이자 주연 존 카메론 미첼과 오만석, 그리고 앵그리인치 밴드가 함께 설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연기 입문 10년 만에 찾아온 '헤드윅'은 결과적으로는 꿀과 젖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그를 이끌었지만 처음부터 발 들여놓기 쉬운 곳은 아니었다. “몸과 마음을 온전히 오픈시켜놓은 다음에라야 가능한 작품이랄까요? 나에겐 너무 두렵고, 설레고, 한편으로는 거부하고 싶었던 작품이었죠. 덩치가 너무 크고 배우가 감당해야할 몫이 컸으니까요.”
오만석의 헤드윅을 두고 존 카메론 미첼은 ‘가장 파워풀하고 가슴에 와 닿는 헤드윅’이라는 평가를 내렸지만 그는 연신 손사래를 멈추지 않는다. “저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해석했다는 부분을 인정해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헤드윅'을 비롯한 공연 무대는 물론이고 TV드라마, 영화쪽에서도 그가 입은 캐릭터들은 컬러와 실루엣이 남다르면서도 강렬한 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평범과 베이직은 인연도, 기호도 아닌 듯 싶었다. 때문에 '내 마음의 풍금'에서 그가 맡은 역할 ‘강동수’-시골마을 초등학교로 부임한 새내기 교사 - 에서 연상되는 바른 생활 사나이는 상대적으로 도드라진다. “실제로 좋아하는 역할은 강렬함과는 거리가 먼 서정적인 역할들입니다. 그렇다고 쉬운 건 아니예요. 어느 쪽이든 내 몸에 맞추기까지 캐릭터라는 옷을 만드는 건 힘들어요. 비결은 부지런한 연습밖에 없어요.”
연습.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우주선을 타고 유영하는 모습이 TV로 생중계되는 시대에도 인간이 인간의 가슴을 움직이는 방법은 여전히 동굴 벽화처럼 고색창연했다. 그리고 그는 겸손이라 믿기엔 정도가 지나치고 거짓이라 보기엔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커밍아웃했다. “제가 원래 음치, 박치에 가까워서요.” 그럼 그동안 우리가 들었던 수많은 뮤지컬 넘버들은 환청이었단 말인가. 공연장의 오빠 부대를 자처하던 팬들은 허스키한 바이브레이션이 일품인 그의 목소리에 ‘만짱’을 연호했기에 그의 고백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남들보다 이해력도 떨어지는데다 타고난 가창력 따윈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다른 배우들이 10분 연습하면 저는 30분을 연습해야 비슷한 수준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한 마디로 반복된 훈련과 연습의 결과죠.”
그럼에도 무대를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연습하면 할 수 있으니까요. 힘든 걸 해냈을 때의 보람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가 한때 무대를 향한 세레나데를 불러왔으나 이제는 회귀가 요원해 보이는 몇 명의 배우들이 보여준 사례들을 뒤따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은 접어도 좋을까. 역시나 긴 눈꼬리를 중립의 위치에 놓고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저에게 무대는 고향이나 근원적인 무엇이라기 보다는 그냥 오래 살던 동네 같고 편안한 작업실 같아요. 오면 괜히 즐겁고 뭔가 만들어내고 싶어지죠.”
그러나 이젠 유희의 차원에서만 공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신도 인정한다. 누가 뭐래도 올해 입대를 앞둔 조승우의 빈자리까지 메꿀 존재감을 가진 배우는 오만석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므로. “올해로 34세, 일의 재미를 느끼기엔 절정의 나이인 것 같아요. 지금은 작품의 결과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다 보니 시선이 한 군데에만 몰려서는 안되더라구요. 여러 곳을 훑어야한다는 스트레스가 있긴 한데 궁극적으로는 이 일에 대한 열정과 흥미로 견뎌내는 것이겠죠.”
무대 위에서는 활화산 같을지언정 마주앉은 오만석은 안으로 에너지를 삼키는 관성에 더욱 길들여진 사람 같다. 그래서 추수철 평화로운 시골 들녘 같은 그의 이름은 생크림 잔뜩 바른 인공적인 가명으로는 담아내지 못할 그의 성정을 얼핏 드러낸다. “2000년대 초반 몇 번 연예 기획사에서 연락을 주신 분들 중 ‘가명을 쓰라’고 권유하신 분들이 10명 중 8명이었어요. 저는 저의 정체성이기도 하고 부르기도 쉬운 이름이라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구요. 왠지 가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구요. 드라마 출연은 성사되지 않았고 저는 제 이름을 간직할 수 있었으니 모든 일엔 때와 인연이라는 게 있는 거겠죠.”
올해 상반기까지 드라마를 위해 헌신했던 그는 남은 2008년은 공연 무대에 투신할 계획이다. 코 앞으로 닥친 - 책이 발간될 즈음에는 이미 끝난 다음이겠지만 - '헤드윅 콘서트',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그리고 뮤지컬 연출가로서 크레딧을 올릴 '즐거운 인생'까지 거침없이 내달릴 일만 남았다. “배우의 길을 선택한 계기들을 묻는 질문들 앞에서 몇 가지 이유들을 대긴 했지만 그게 정말 내 가슴을 퉁퉁 치고 올라왔던 건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막연하고도 강렬한 끌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거친 오프로드를 지나 잘 닦인 신작로를 달리고 있는 그는 이제 자신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매번 무대에서 떨어질 것처럼 힘들어요. 내가 선택한 줄에서 한번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기는 더욱 힘들테니까요.”장르를 오가며 보여준 수많은 얼굴로 보자면 캐릭터 간의 수직 이동에도 비범한 능력이 있음은 증명되었지만 '내 마음의 풍금'을 앞두고는 다시 설레인다. 그 설레임을 안고 ‘즐거운 작업실같다’는 연습장으로 향하는 그에게 줄에서 떨어지는 일 따위는 기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