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6.28 03:26
[이규현의 그림산책]
이 작품은 반 고흐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으며 점묘법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조르주 쇠라(1859~1891)의 손자가 가지고 있다 내놓았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화가에 비해서도 우리의 화가들은 소를 많이 그렸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중섭이지요. 그는 일제시대와 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의 분노를 상징하는 동물로 황소, 흰 소 등을 택해 그렸습니다.
박수근은 동물 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삼성미술관 리움에 전시돼 있는 그의 대표작 '소와 유동'(1962년)은 한가로이 누워있는 소 한 마리가 화면 윗부분을 꽉 채운 그림입니다. 박수근은 누워 쉬는 소를 스케치한 드로잉은 여러 점 남겼습니다.
근대 한국 화가였던 운보 김기창의 청록산수에는 촌부(村夫)와 함께 소가 자주 나옵니다. 거슬러 올라가 조선 후기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에도 소가 단골로 등장합니다.
우리 그림 속에 소가 많은 이유로는 우리에게 중요한 동물이고 쉽게 볼 수 있는 소재였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소 닭 보듯 한다' 같은 속담이 많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 생활과 뗄 수 없었던 동물입니다.
주식 시장의 오름세를 뜻하는 '황소장(Bull Market)'이라는 표현을 보면, 서양에서도 소는 힘과 행운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화가들에게 있어 '소'라는 모델이 가진 조형미는 역동성과 기(氣)를 표현하기에 좋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동물그림으로 유명한 사석원(48)은 어린 시절 외가가 있었던 경기도 포천의 풍경을 떠올리며 소를 즐겨 그립니다. 작가는 이에 대해 "소는 한 집안의 희망이면서 가족의 구성원이었다. 가축이나 재산 이상의 의미라는 점에서 무게가 있고, 우리 정서와 기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말합니다.
붉은 바탕을 배경으로 커다란 눈이 이글거리는 이중섭의 '황소'(1853~1954년)를 보면 슬픈 역사를 이겨내고 있었던 우리 민족의 분노와 의지가 소의 얼굴에 그대로 이입돼 있습니다.
우직하고 순하고 희생적이지만, 화가 나면 저돌적이고,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소는 우리 민족성을 닮았습니다. 그러니 감정이입을 하기에도 소만큼 좋은 소재가 없습니다.
마침 내년은 소띠 해입니다. 내년 1월 1일자 신문 1면에는 어느 화가가 그린 밝고 힘차게 발길질하는 소의 모습이 실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