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원초적 시끄러움이 무대 장악

  • 한현우 기자

입력 : 2008.06.27 02:42

에밀 쿠스트리차 내한 공연

영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속 결혼 피로연이 고스란히 서울로 옮아온 듯했다. 무대는 한판 난장(亂場)이었고, 밴드 멤버들은 공연 초반부터 객석을 돌아다니며 (젊은 여성 관객만 골라) 얼싸안고 춤을 췄다.

지난 24일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 유럽의 영화 거장 에밀 쿠스트리차(54)가 올랐다. 그는 메가폰 대신 일렉 기타를 들고 있었다. 함께 선 밴드는 동유럽 집시밴드 '노 스모킹(No Smoking) 오케스트라'. 보컬과 기타, 베이스, 바이올린, 드럼, 색소폰, 아코디언으로 구성된 7인조였다.

펑크(punk)와 스카에 로큰롤을 입히고 집시 음악으로 짬뽕 범벅을 한 음악은 분명 '공연용'이 아니라 '축제용'이었다. 강약고저도 없고, 치고 빠지거나 감싸안고 물러섬도 없이 보컬을 비롯한 모든 악기가 첫 곡부터 줄곧 악다구니를 썼다. 음향감독은 사운드믹서를 최대치로 올려놓고 잠이라도 자는 걸까. 뒤돌아 보니 그는 카메라로 객석을 찍고 있었다. 덕분에 메탈리카와 나인인치네일스 공연에서도 못 느꼈던 원초적 시끄러움이 전정기관을 휩쓸고 달팽이관을 휘돌며 뇌를 강타, 중추신경계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쿠스트리차는 영화 '삶은 기적이다'와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에서 쓰였던 노래들에 핑크 플로이드와 딥 퍼플, 레드 제플린 히트곡의 인트로를 섞어 두 시간을 내달렸다. 객석에 있던 영화배우 예지원이 무대에 불려나와 멋진 춤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쿠스트리차 공연 막바지엔 관객 30여명이 무대로 올라와 한바탕 춤판을 벌였다. 가운 데 바이올리니스트 왼쪽 기타를 치는 이가 쿠스트리차./LG아트센터 제공

새빨간 비단 옷에 프릴까지 달고 나온 남자 보컬리스트는 믿기 어려울 만큼 정력적으로 뛰어다녔다. 다만 그가 문제의 프릴 블라우스를 벗어던지고 뱃살과 가슴살을 출렁이며 춤을 출 때, 그의 허리춤이 점프 한 번에 0.5㎝씩 하강하는 걸 보는 건 괴로운 경험이었다. 후반 30분은 정말 동유럽 어디 장터에라도 와 있는 것 같았다. 3m는 됨 직한 거대한 활에 바이올린과 기타 현을 냅다 비벼 굉음을 내는 퍼포먼스가 압권이었다.

1986년 밴드에 합류한 쿠스트리차의 기타 솜씨는, 피아노로 치면 체르니 100번 수준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관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무대는 다른 그 무엇이었다. 영화제 뒤풀이, 쿠스트리차 팬미팅, 동유럽문화 동호회…. 공연 말미 보컬은 "니 다모, 코소보"를 외치며 연호를 유도했다. "코소보를 내줄 수 없다"는 뜻이라는데, 학살로 얼룩진 세르비아와 코소보 간 분쟁을 생각하니 입맛이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