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비운 그 자리… 영혼은 여전히 춤춥니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06.26 03:18 | 수정 : 2008.06.26 05:23

시인·무용평론가 故 김영태 1주기 추모 공연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망자의 객석' 마련

김영태가 자신의 초상을 그린 캐리커처. /MCT 제공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객석 '가구역 L열 11번'에 고(故) 김영태(1936~2007)가 초대된다. 시인이자 무용평론가였던 김영태 1주기를 맞아 열리는 추모 무용 공연 《나의 뮤즈들》이 망자의 객석을 마련했다. 지난 30년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무용 공연이 있을 때마다 김영태가 단골로 앉던 가구역 L열 11번에는 생전에 그가 쓰던 모자, 지팡이 등이 꽃과 함께 놓일 예정이다.

김영태 추모사업회(위원장 김원)는 오는 7월 12일 오후 6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나의 뮤즈들》을 공연한다. 고인이 아꼈던 무용수들이 무대에 오른다. 발레리나 김지영(네덜란드 국립발레단)과 김주원(국립발레단)이 고인의 시 〈나의 뮤즈에게〉와 〈과꽃〉을 각각 낭송하고, 국립무용단 장현수는 김영태로부터 받은 시 〈남몰래 흐르는 눈물〉로 만든 작품을 올린다. 투병 중이던 김영태로부터 "완쾌되면 무용 대본을 골라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던 발레리나 허인정은 그 일을 소재로 한 〈깨어진 약속〉(안무 허용순)을 공연한다.

춤 장르로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이 다 들어 있다. 김영태와 인연이 깊었던 중견 발레리나 김순정은 헌정작품 〈연(緣)〉을 초연하고, 고인의 시 〈저 분홍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주인공이었던 황희연은 〈살풀이춤〉으로 그를 추모한다. 이 밖에도 안성수픽업그룹의 〈그 곳에 가다―습지〉, 이용인 안무의 〈사계―여름〉, 발레리나 한서혜의 〈돈키호테〉 등이 이어진다.

'가구역 L열 11번'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왼쪽 통로쪽 구석자리다. 문예회관 시절 이 자리는 '가열 123번'이었다. 김영태는 '문예회관 가열 123번'이라는 시까지 남겼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쓴 것인데, 내가 생전에 춤을 보던 풍경쯤으로 보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누구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춤 구경하던 늙은이가 결근했나보다고/…/ 보는 것도 業이지요/ 제가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날/ 나의 누이들 중 누구 하나/ 꽃다발을 놓고/ 가는 게 보이는군요/ 말없이 그가/ 세상 떠난 날"
김영태 추모 무대에서〈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공연할 장현수. /MCT 제공
《나의 뮤즈들》이 공연되는 날 공연장 로비에는 김영태가 그린 춤 풍경들이 전시된다. 공연 전날에는 고인이 수목장(樹木葬)으로 묻힌 강화도 전등사의 한 나무를 찾아 참배하는 순서도 있다. 이 추모공연을 기획한 MCT 장승헌 대표는 "고인이 무용계에 남긴 업적을 돌아보고 의미를 나누는 자리"라고 말했다. 무용수들은 개런티 없이 참여하고 아르코예술극장은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박명숙 경희대 교수와 박인자 숙명여대 교수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전석 초대공연으로 전화로 예매해야 볼 수 있다. (02)2263-4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