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속에서 내 삶이 새롭게 싹텄다"

  • 김수혜 기자

입력 : 2008.06.23 23:18 | 수정 : 2008.06.24 04:15

서울 개인전 여는 프랑스 조각가 레이노
알제리 전쟁 중 2년 군복무
정규 미술교육 받은 적 없어
화단과 거리 두고 혼자 작업

프랑스알제리가 전쟁 중이던 1961년, 키가 껑충한 한 프랑스 병사가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알제리에서 고향 파리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꼬박 1년간 청년은 고향집 침대에 누워 지냈다. 사람도 안 만나고, 외출도 안 했다. 다친 곳도, 아픈 곳도 없었건만 온종일 식물처럼 드러누워 푸르스름한 눈동자만 껌벅거렸다.

"돌이켜보면 그건 일종의 '자살'이었다"고 프랑스 조각가 장 피에르 레이노(Reynaud·69)는 말했다.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레이노는 찬 물로 입을 가시며 싱긋 웃었다.

레이노는 초현실적으로 보일만큼 거대한 화분을 빨강색, 파랑색, 노랑색, 금색, 흰색으로 만들어서 파리 퐁피두센터, 베이징 자금성, 도쿄 하라미술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등에 세운 작가다. 지난해 하나은행 광고에 쓰인 새빨간 화분이 바로 그의 작품이었다. 이로 인해 국내 미술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지명도가 높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대형 화분을 화랑 옥상에 설치한 것을 비롯해 여러 색깔의 페인트통을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넣은 설치 작품 등을 선보인다.

"저는 원래 예민한 아이였어요.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상실감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지요. 알제리 전쟁터에서 직접 피 흘리며 싸운 건 아니에요. 장군의 당번병이었거든요. 그럼에도 전쟁과 군대의 폭력성에는 충격을 받았어요."
프랑스 조각가 장 피에르 레이노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 옥상에 놓인 자신의 작품‘흰 화분’앞에 섰다. 레이노는“화분은 관객들이 내 작품 세계로 들어올 수 있는 열쇠”라고 말했다. /이태경기자 ecaro@chosun.com
레이노는 "이런 세상에 나아가고 싶지 않다고, 영원히 침대에 누워 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삶이 나를 부추겨서 일어나게 했다"고 말했다. "어느 날, 비틀비틀 일어나서 차고에 들어가니 화분이 있더군요."

정규 미술교육이라고는 받은 적이 없는 청년이 그날부터 화분을 가지고 '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내 내부에 '표현하려는 욕망'이 흘러 넘쳤다"며 "미술사 책을 들여다보거나 학교 문전을 기웃거릴 여유도 없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병사처럼 앞으로 나아갔다"고 했다. 자신을 표현하는 '화분의 탄생'이었다.

알제리 전쟁에 참전하기 전, 베르사이유에 있는 4년제 원예학교에 다닌 그는 미술로 길을 돌린 뒤에도 화단(畵壇)과는 얼마간 거리를 뒀다.

평론가들은 그가 공산품을 소재로 작업했다는 점을 들어 "미국 팝아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죽음과 알제리 전쟁의 기억에서 "생명과 죽음에 대한 집착"을 읽기도 한다. 레이노 본인은 "내 작품에는 꿈, 환상, 욕망 등이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고 묻자, 노인이 환하게 얼굴을 밝혔다. "평생 혼자 살 줄 알았는데 10년 전에 내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어요. 아들이 다섯 살인데, 화가 마티스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이름을 '마티스'라고 지었어요. 그 놈이 얼마나 예쁜지!"

다음달 15일까지. (02)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