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울수록 자유로워지다

  • scene PLAYBILL editor 김아형
  • scene PLAYBILL photographer 강정윤

입력 : 2008.06.18 16:32

무용가 홍신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무엇이든 해야 하고, 무엇이든 하고 싶지만 정작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결국 인생은 이 상반된 자유를 찾아 헤매는 과정이 아닐까. 예순일곱이라는 나이가 무색한 홍신자의 춤에는 어떤 구속이나 법칙이 없다. 그저 자유로워지기 위한 ‘비움’만이 가득할 뿐. 홍신자가 자유라는 이름에 몸을 맡긴 지도 서른다섯 해가 지났다. 아무리 자유롭게 부는 바람도 머무는 자리는 있는 법. 홍신자의 바람이 머무는 ‘웃는돌’에 도착하자 그녀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을 묻고 싶었다. 
내 마음이 웃으면 돌도 웃는다

자두나무에 매달린 맑은 풍경 소리, 흙집에서 불어오는 지나간 세월의 냄새, 삐거덕거리는 산장의 나무 바닥. 무용가 홍신자가 살고 있는 ‘웃는돌’ 명상센터는 깊은 산골 오두막을 닮았다. 그녀가 죽산의 산기슭에 터를 마련한 것은 15년 전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후부터다. 은둔하고 싶어 이곳에 왔지만 홍신자는 이곳에서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기쁠 때는 길가의 돌도 웃고 있는 거 같거든요. ‘웃는돌’은 그런 의미예요. 일 때문에 서울에 있다가 ‘웃는돌’로 돌아오면 엄마의 품처럼 편안해요. 여기서 명상을 하고, 오솔길을 걷거나 바람을 느끼고 나무 소리를 들으면서 새 작품의 구상도 해요.” ‘웃는돌’을 찾아온 이에게 그녀는 이름을 묻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왔고 왜 왔냐고도 묻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새로운 이름을 선물한다. 옥돌, 철쭉, 진달래 같은 자연에서 따온 이름을 지어주며 홍신자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지금, 여기라고. 

미국에서 동서양을 접목시킨 전위무용으로 명성을 날리던 그녀가 죽산에 자리를 잡은 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죽산국제예술제’였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의 조화를 모토로 그녀는 오랜 교분이 있는 해외의 예술가들을 이곳으로 초청했다.

“해외 아티스트들이 이런 시골까지 와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나누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개인적으로 해온 건데 갈수록 반응이 좋았어요. 세계적인 명사들 많이 왔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일본 무용의 무형문화제 격인 카즈오 오너예요. 그녀가 95세의 나이에 이곳에 와서 공연했으니 굉장히 큰 이벤트였죠. 또 뉴욕 실험 연극의 대모, 앨랜 슈미트가 온 적이 있는데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을 소재로 이곳 주민들과 함께 한 달간 프로젝트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6월 7일과 8일에 열리는 ‘14회 죽산국제예술제’에는 덴마크의 래핑맨(laughing man)이 초청되었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웃음을 통한 치유를 전파 하고 있는 그를 소개한 이는 몇 해 전 이곳을 찾았던 덴마크의 아티스트다.

한국의 웃는돌, 래핑스톤이 있다면 덴마크에는 래핑맨이 있다는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또 이번 예술제를 통해 그녀는 신작 <고도를 기다리며>의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기다림 끝에 만난 고도

스물일곱, 영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호텔 경영을 공부할 작정으로 미국행 짐을 꾸렸다. 그리고는 우연히 현대 무용가 알윈 니콜라이의 무대를 보고 춤을 추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10년 동안 춤만 추었다.

애초부터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동양의 전통에 뿌리를 둔 아방가르도한 춤으로 그녀는 주목받기 시작했고 존 케이지, 유지 타카하시 등 유명 아티스트와의 공동 작업도 이어졌다. 1973년 처음 한국 무대에 오른 홍신자는 ‘자기를 내던진 춤’이라는 평을 받은 창작무용 <제례>로 보수적인 한국 무용계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홍신자의 춤을 보고 전공을 철학으로 바꿨다’는 이들도 있었을 정도.

그러던 서른다섯, 그녀는 돌연 모든 것을 버리고 3년 동안 인도를 누비며 자아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다시 춤의 품에 안긴 그녀는 1993년 한국으로 돌아와 ‘웃는돌’ 무용단을 창단하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순례>, <새>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지칠 줄 모르는 홍신자의 춤 여정은 올해로 35년째, 이를 기념하는 신작 <고도를 기다리며>가 7월 3일부터 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30주년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너무 빨리 가네요. 산다는 건 길이로 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순간순간의 연장이며 앞과 뒤가 없고 전과 후가 없는 거니까. 35주년 기념공연으로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용으로 만들었어요. 지금의 나이가 되니까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겠더라고요.”

그녀는 30년 전 처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던 날을 회상한다. 보는 동안은 흥미로웠지만 연극이 끝나자 ‘좀처럼 이해가 어렵다’는 답답함이 엄습했다. 대중이 관심을 가질 만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그녀는 기억 속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끄집어 냈다. 그리고 연극을 다시 보면서 해답을 얻었다.

홍신자는 이 작품을 삶에 대해 고뇌하는 한 수도승이 명상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그리고 그녀가 찾은 고도가 무엇인가 하는 답을 공연 마지막 부분에 텍스트로 보여줄 예정이다.

“이 작품만큼 메시지가 확실한 작품은 없었어요. 제가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축적 속에서 구한 답이니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또 <고도를 기다리며>로 뉴욕에서 열리는 ‘아시안 아트 페어’의 오프닝 무대에도 서게 됐어요. 11월 18일부터 뉴욕 라마마 극장에서 2주간 공연되는데 해외의 반응도 기대되네요. 연극을 무용으로 만든 시도라는 점에서 저 역시 기대가 크거든요.”

자아를 찾아 인도에 갔던 홍신자는 2년을 허비한 후에야 무아(無我)의 경지를 체험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느낌이 고도를 만난 느낌과 비슷했다고 말한다. 절실하게 찾아 헤매던 ‘어떤 것’을 놓은 순간, 거짓말처럼 다가온 무아, 그리고 다시 시작된 기다림.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줄 고도는 이런 게 아닐까.

자유는 나의 집, 그 안에 머무르기를 소망한다

춤으로 이야기하고 춤으로 사유하며 춤으로 유희하는 홍신자의 다른 이름은 작가다. <자유를 위한 변명>부터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나는 춤추듯 순간을 살았다> 등 베스트셀러가 된 그녀의 에세이는 하나같이 ‘자유’를 화두로 삼고 있다.

“저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아요. 제 책을 읽고 수녀복을 벗은 이도 있었고, 뒤늦게 내면의 열정에 눈을 떠 ‘나도 춤을 출 수 있느냐’고 찾아와 묻던 중년 여성도 있었죠. 물론 저는 ‘출 수 있다’고 답했어요. 춤에 나이가 어디 있겠어요.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춤은 춤일 뿐이에요. 마흔 살에도 일흔 살에도 원한다면 추면 되는 거에요.”

홍신자는 어떻게 하면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물음에 “순간에 충실하면 그게 자유”라고 일축한다. 미래를 계획하고 흘러간 과거의 일들에 연연하는 순간 자유는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충실하다면 나를 구속하는 건 어떤 것도 없다. 그 순간 나는 이미 완전한 자유를 얻은 것. 하지만 일상의 미련을 떨치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예를 들어 물질적으로 잘 먹고 잘 산다는 만족감과 정신적으로 자유롭다는 만족감 둘 중 어느 쪽을 택하시겠어요? 물질세계의 만족도가 유한하다면 정신적 세계의 만족도는 무한대예요. 그걸 아는 제가 어떻게 자유를 택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저에게 자유란 편안한 ‘내 집’과도 같아요. 집이자 고향인 자유 안에서 비로소 저도 완전해지죠.”

홍신자가 그토록 갈구해 온 구도의 춤이란 자유를 향한 ‘몸짓’이었음을 이제 온전히 이해할 것 같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염려로 오늘의 삶을 저당 잡히는 건 어리석은 일.

자유롭고 싶다면 계획하지도 목표를 세우지도 말라고 조언하는 그녀이지 않던가.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어느 순간 당신도 고도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끝으로 홍신자는 유유히 ‘웃는돌’의 안채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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