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는 내 마음을 비춰주는 신천지였다"

  • 김수혜 기자

입력 : 2008.06.16 23:19 | 수정 : 2008.06.16 23:22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 인터뷰
백남준은 너그러운 요술쟁이… 내게는 '대학원' 같은 존재
비디오아트는 음악과 흡사…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 발견

백남준의 제자이자 비디오아트의 거장인 빌 비올라(Viola·57)의 작품이 잇달아 국내에서 전시된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10월 26일까지 비올라가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 선보인 대작〈해변 없는 바다(Ocean Without a Shore)〉를 상영하고 있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는 27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비올라의 근작 열 점을 모은 《변모(Transfigurations) 전》이 열린다.

비올라는 정적(靜的)이고 시적인 화면을 구사한다. 〈해변 없는 바다〉에서 그는 죽음을 다뤘다. 그가 베니스의 오래된 성당에서 이 영상을 틀었을 때 여러 관객이 흐느껴 울었다. 비올라는 20세기 세네갈 시인 디옵(Diop)에게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디옵은 이렇게 읊었다.

"죽은 이들은 흙 속에 쉬지 않네/그들은 살랑거리는 나뭇잎 속에/웅얼거리는 숲 속에/흐르는 물과 멈춘 물 속에/오두막과 군중 속에 있네/죽은 이들은 죽지 않네."

국제갤러리에 선보이는 근작 열 점 중 〈밀레니엄의 다섯 천사(Five Angels for the Millennium·2001년작)〉는 비올라의 대표작 중 하나다. 런던 테이트미술관, 뉴욕 휘트니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에 걸려 있다.
한 남자가 먼데서 다가와 또렷하게 관객 앞에 섰다가 천천히 뒤돌아 사라져가는 비올라<아래 사진>의 작품〈변모〉의 일부분.〈 변모〉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된 대작〈해변 없는 바다〉를 7분 분량으로 작 가가 재편집한 작품이다. (사진은 비디오 작품을 정지화면으로 촬영해 왼쪽부터 재배치한 것이다.)/국제갤러리 제공
평론가들은 비올라가 "생존 작가 중 가장 중요한 비디오아트 작가 중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199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대표로 베니스비엔날레에 나갔다. 뉴욕현대미술관(1987)·휘트니미술관(1997)·게티미술관(2003)·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2004)·런던 국립미술관(2003)·일본 모리미술관(2006)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캘리포니아주(州) 롱비치 작업실에서 전화를 받은 비올라는 "나는 1950년대가 낳은 아이"라고 말했다. "내 인생은 TV의 발전과 함께 했죠. 고교 졸업반 미술수업에서 비디오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마침내 내 마음과 흡사하게 작동하는 매체를 발견했다!'고 전율했어요. 곧바로, 완전히, 완벽하게 매혹당했죠."

그는 시라큐즈 대학에서 실험예술을 전공하면서 본격적으로 비디오아트에 탐닉했다. "백남준을 제외하면 비디오아트는 거의 전인미답이었어요. 신천지에 뛰어든다는 흥분이 있었지요."
그는 "비디오아트는 음악과 흡사하다"고 했다. "음악의 핵심은 악보가 아니라 소리입니다. 비디오아트는 어떤 의미에서 전파의 진동일 뿐이죠. 그렇지만 나는 비디오아트가 미술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생각했어요."

비올라는 뉴욕 퀸즈에서 자랐다. 항공사 승무원인 아버지는 과묵하고 다혈질이었다. 아들에게 "사나이는 '예술' 따위 말고 '진짜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함께 그림을 그렸다.

어린 비올라는 수줍고 말이 없었다. 학교가 파하면 직선거리로 귀가하는 대신, 눈 앞에 펼쳐진 여러 갈래 골목길을 바라보며 "오늘은 어느 길로 갈까" 궁리했다. 똑같은 지점(집)을 향해 매일 다른 길을 택했고, 일부러 에둘러 가는 먼 길 위에서 공상과 명상에 잠겼다.

비올라는 회화를 방불케 할 만큼 느릿한 영상으로 삶과 죽음의 본질을 파고든다. 그는 "변하는 것(the temporary)과 변하지 않는 것(the timeless)의 접점에 선 예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변하는 것'은 기술과 매체와 유행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태고 이래 반복되는 인간의 삶이다.

"오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내일 사라질 것이고, 혹은 새로운 무엇인가가 태어날 거예요.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길고 긴 미술사의 밑바닥에 어떤 근본적인 연결이 있어요. 미술관에 가서 옛날 작품을 보고 감명받는 것은 그 때문이죠."

비올라는 "인간 존재의 핵심은 고통"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 불교와 기독교 미술에 밝다. 그는 "부처가 말씀하셨듯 살아있는 것 자체가 시시각각 고통이지만, 인간은 고통의 순간에 최고의 미덕을 보여준다"고 했다. "한때 서양 중세 미술에 피와 폭력이 넘친다고 생각했으나, 부모를 임종한 뒤 기독교 미술에 깃든 '슬픔'의 미학에 눈떴다"고 했다.

"인생은 혼돈스럽고 무작위적이지요. 우리는 병들고, 다치고, 폭력에 상처받아요. 동시에 자연의 패턴을 이해하고, 자연을 재료로 집과 시와 음악을 만들어내죠. '인생에 의미 따위는 없다'는 주장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문의 국립현대미술관 (02)2188-6000, 국제갤러리 (02)735-8449

스승 백남준과 빌 비올라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는 "나는 학교가 아니라 백남준에게 비디오아트를 배웠다. 백남준이 나의 '대학원'이었다"고 했다.

그는 시라큐즈 대학 졸업반 때부터 백남준의 조수로 일했다. "백남준은 마스터, 나는 도제였어요. 비디오아트라는 전위예술을 '도제'라는 대단히 전통적인 형식으로 익혔죠."

그가 기억하는 '스승' 백남준은 "너그러운 요술쟁이"다. "작가들은 대부분 남이 자기 아이디어를 베낄까 봐 전전긍긍하지요. 그러나 백남준은 누구에게나 '비디오아트라는 신천지가 있어' '비디오아트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신이 나서 가르쳐줬어요."

비올라가 전하는 '스승과의 잊지 못할 순간'은 1974년 1월 14일 밤이다. 그날 백남준은 뉴욕주(州) 이버슨 미술관에 〈TV 가든〉이라는 설치작품을 세웠다. 밤새 비가 내리는 가운데 비올라가 작업을 거들었다. 작업은 이튿날 새벽 3시에 끝났다. 전시회 개막이 불과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때 갑자기 비가 멎고, 달빛이 구름 사이로 환히 비쳤다. 밤하늘을 밝히는 달빛과 지상에서 명멸하는 TV 이미지가 물기 어린 유리 천장에서 어우러졌다. 제자 비올라가 숨을 삼켰다. "보세요, 선생님!" 스승 백남준이 껄껄 웃었다. "달빛은 하이 아트(high art), 내 비디오는 로우 아트(low art)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