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6.11 10:36
첼리스트 송영훈

1710년산 첼로를 품에 안은 송영훈이 진중하고 감미로운 선율을 뿜어낸다. 30년간 심장 가까이 스트링의 진동을 느끼며 살아온 첼리스트 송영훈. 그의 인생에 촘촘히 얽혀 있는 네 줄의 현에선 날마다 색다른 울림이 흘러나온다.
Q. 전 세계를 누비며 연주하는 아티스트가 국내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라디오 진행을 하다니, 매우 의외다(그는 4월 21일부터 KBS1FM에서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송영훈의 가정음악'을 진행하고 있다).
A. 이것 때문에 요즘 스케줄이 약간 힘들어졌다(웃음). 주중엔 라디오 생방송, 주말엔 봉사활동을 하느라 개인 시간이 거의 없다. 사실 올 1월에 KBS 1FM '생생 클래식'의 객원 DJ를 일주일간 하면서 라디오 진행의 매력을 느꼈었다. 클래식은 어려운 것도, 특정계층의 전유물도 아니라는 것을 나 같은 연주자의 입을 통해 말해 주고 싶다.
Q. 라디오의 코너를 보니까 직접 개입하는 부분이 많더라.
A. 진행을 비롯해 선곡, 게스트 섭외, 아이디어 기획까지 모든 분야에 참여하고 있다. 제작진이 이걸 노린 게 아닐까(웃음). PD와 작가 둘, 나까지 총 네 명이서 매일 머리를 맞대며 회의를 한다. 라디오 부스에서 나오면 매니저가 그런다. 꼭 연주를 끝낸 사람 같다고. 방송이 마치 열정적인 연주처럼 느껴진다.
Q. 항상 질문만 받다가 진행자가 되니까 어떤가.
A. 대답하기 곤란했던 질문들을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있더라(웃음). 예를 들어 ‘존경하는 작곡가를 말하시오’식의 질문을. 또한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를 추천해 달라는 것을 빠트리지 않는다. 아티스트가 예술적 감성으로 바라본 타국의 풍경을 음악과 함께 청취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Q. 현재 ‘SK텔레콤 해피뮤직스쿨’(저소득 가정에서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교육하고 후원하는 프로그램)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항상 엘리트 코스만 걸어온 당신이 반대의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그간 많은 축복 속에서 자라왔고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다. ‘해피뮤직스쿨’은 그동안 내게 도움 주신 수많은 분들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Q. 이전에도 유사한 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나.
A. 미국에서 유학할 때 경제적·문화적으로 소외받은 지역의 주민들을 찾아가 음악회를 열곤 했었다. 원래 이러한 봉사는 40, 50대 즈음에 하려 했는데 우연히 기회가 생겼고, 오히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더욱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꺼이 참여하게 되었다. 음악으로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
Q. 갑자기 제자들이 여럿 생겼을 텐데. 그들의 실력은 어떤가.
A. 엄격한 과정을 통해 선발했기에 아이들의 실력은 매우 뛰어나다. 특히 (조)현준이 같은 경우에는 콩쿠르에 나가서 훌륭한 성적도 거두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수업 외엔 일체의 레슨을 받지 않는데도 말이다. 대단하지 않나.
Q. 예원학교에서 주말마다 수업을 한다고 들었다. 분위기가 궁금하다.
A. 아이들 중에는 수업료 낼 형편이 되지 않아 공립학교조차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그러다 보니 ‘해피뮤직스쿨’을 통해 일종의 소속감을 갖기도 한다. 살벌한 경쟁구도도 없고, 다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하나라도 더 나누려는 분위기이다. 지난번에 한 학생의 어머니가 등에 아기를 업고,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수업에 함께하기도 했다. 어딜 가서 이런 따뜻한 모습을 볼 수 있겠나.
Q. ‘자유방임’형 선생님일 것 같다. 지금의 뛰어난 실력과는 달리 어릴 때는 연습하기 무척 싫어하는 학생이었다고 들었다.
A. 바이올린을 전공하던 형보다 큰 악기를 하고 싶어 첼로를 선택했던 꼬마였다. 연습 안 하려고 매일 도망 다녔더니 레슨 선생님이 2주일에 한 번씩 바뀌더라(웃음). 가르칠 때 자유로운 스타일이긴 한데 학생들이 나태해질 때면 엄하게 대하기도 한다. 잘할 수 있는 능력이 다분한데도 노력하지 않는 건 잘못이라 생각한다.
Q. 제자들이 성장해 같이 무대에 서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있나.
A. 생각만으로도 뿌듯하다. 그들이 훌륭한 음악가, 혹은 바른 어른으로 성장하여 지금의 혜택을 사회에 또 환원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Q. 얼마 전 출연한 KBS '낭독의 발견'이 화제가 되었다. 부인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난 방송이었다.
A. 상당히 쑥스러웠다. 그녀는 뉴욕에, 난 한국에 있으니까 언제나 애틋하고 그립다.
Q. 아까 첼로 케이스 안에 붙여 놓은 결혼식 사진을 살짝 보긴 했는데, 부인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A. 그녀의 이름은 제니퍼 림이고, 홍콩 사람이다. 연극배우인데 '세비지스(The Savages)'(2007)나 '27번의 결혼 리허설(27 Dresses)'(2008) 등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부부가 예술을 하다 보니 감성이 더 풍부해지는 면이 있더라. 함께 브로드웨이에 뮤지컬 보러 자주 간다. 문화생활 같이하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Q. 가수 김동률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그의 5집 앨범 ‘뒷모습’이란 곡에도 참여했고, 4월 30일엔 콘서트 게스트로 서기도 했다. 심지어 생년월일도 같더라.
A. 동률 씨가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항상 생년월일이 같음을 강조하곤 한다. 그는 매우 예의바른 사람이라 콘서트에 출연해 달라는 부탁도 아주 정중하게 했다. 대중가수의 무대에서 새로운 청중들과 만나니까 기분이 새롭더라. 6월 29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있을 내 콘서트 'Eternal Tango'에도 그가 게스트로 나오기로 이미 약속했다. 서로 돕는 거다.
Q. 요즘 MIK 앙상블(첼리스트 송영훈, 피아니스트 김정원, 비올리스트 김상진,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으로 구성된 클래식 그룹)의 활동은 뜸하다.
A. 대신 디토가 잘해 주고 있어서 흐뭇하다(웃음). 바람직한 현상이다. 한국 연주자들은 솔로이스트가 되려는 경향이 강한데 그런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고 그 같은 이유에서 MIK 앙상블이 탄생했다. 물론 실내악에 보다 많은 관객들이 와주기를 바라는 목적도 있었다. 당분간은 각자의 스케줄로 바쁘지만 조만간 뭉칠 예정이다. 그게 우리의 존재 이유니까. 지금은 주어진 활동에 충실하고 싶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