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6.09 13:04
서울시오페라단 특별공연 '돈 조반니'

세 시간이 넘는 긴 공연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긴장과 경탄을 늦출 수 없는 모차르트 예술의 절정 '돈 조반니'. 프랑스 대혁명을 2년 앞둔 1787년, 프라하 에스타테스 극장에서 초연된 이 오페라는 아름답고 재기 넘치는 아리아들로 가득 차있다.
장중하고도 유쾌한 서곡이 끝나고 나면 무대 위에서는 돈 조반니의 하인 레포렐로가 불평을 늘어놓는다. “월급은 쥐꼬리만큼 받으면서 내 수고를 알아주지도 않는 주인을 위해 밤낮으로 비바람을 견디며 봉사해야 하다니... 좋은 건 귀족들만 다 하고, 내 신세는 대체 뭐야?” 비바람을 견디며 일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주인인 돈 조반니가 처녀든 유부녀든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공략하는 데 바쁘기 때문에, 하인 레포렐로는 여자의 남편이나 애인의 공격에 대비해 무장을 한 채 밖에서 망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
‘돈Don’은 귀족에게 붙이는 칭호, ‘조반니Giovanni’는 이탈리아에서 흔한 남자 이름인데, 영어로는 존, 프랑스어로는 쥐앙, 독일어로는 요한 또는 요하네스, 스페인어로는 후안이다. 돈 조반니는 귀족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매력 있는 외모를 무기로 무수한 여자들을 유혹하고, 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재빨리 도망가는 남자. 정치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성공, 재산 축적, 명예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순간의 쾌락에 모든 것을 건다.
사회는 당연히 바람둥이에게 적대적이다. 우선은 한 여자 또는 한 남자가 다수의 이성을 사로잡는다는 ‘특권’에 대해 배가 아프기 때문이고, 바람둥이를 용인할 경우 일부일처제가 흔들리고 유산상속에 혼선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혁명적인 변화를 원하기보다는 기존 사회의 틀을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사회규범을 침해하는 개인에 대해서는 힘을 모아 응징하려고 한다. 모차르트 오페라의 주인공 돈 조반니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교훈을 뛰어넘는 ‘벌받는 개인’의 좋은 예다.
이 주인공의 모델은 16세기 세비야의 귀족이었던 실존인물 오수나 공작이며, 가브리엘 테예스(필명: 티르소 데 몰리나)라는 수도사가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 손님'이라는 제목으로 이 소재를 희곡으로 만들었다. 전작(前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1786)이 성공을 거두자 모차르트는 프라하에서 새 오페라 작곡을 의뢰 받을 수 있었다. '피가로의 결혼' 함께 탄생시킨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는 새 작품을 위해 모차르트에게 이 돈 조반니 소재를 제공했고, 그렇게 해서 이 불멸의 걸작이 탄생했다.
1막에서 돈 조반니는 기사장(騎士長)의 딸인 돈나 안나에게 반해 그녀의 약혼자로 위장하고 밤중에 몰래 안나의 방에 침입한다. 그를 약혼자 돈 오타비오로 착각했던 안나는 곧 사실을 알아차려 완강하게 저항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고 쫓겨 나오던 돈 조반니는 운 나쁘게 기사장과 맞닥뜨리자 결투 끝에 그를 죽이고 도망친다. 그러자 안나는 약혼자에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시킨다.

두 번째 여주인공 돈나 엘비라는 돈 조반니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하다가 하루아침에 버림받은 여자. 결혼식까지 올리고 남자가 홀연히 사라져버리자 엘비라는 “그 인간이 내 품 안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심장을 갈갈이 찢어놓겠다”고 이를 갈며 돈 조반니를 찾으러 다니지만, 사실은 다시 만나 사랑을 되찾고 싶은 미련으로 간절하다.
그녀에게 ‘카탈로그의 노래’로 약을 올리며 자기 주인의 실체를 폭로하는 레포렐로. 이제까지 돈 조반니가 농락한 여자들의 이름이 빼곡이 적힌 수첩을 병풍처럼 펼쳐 보이며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이탈리아 여자가 640명, 독일에선 231명, 프랑스 여자가 100명, 터키 여자는 91명, 홈그라운드인 스페인에서는 천 명 하고도 셋. 온갖 신분, 갖가지 생김새, 별별 연령층의 여자가 다 있죠. 겨울에는 살집 좋은 여자, 여름에는 마른 여자를 고르고, 키 큰 여자보곤 기품 있다고 칭찬, 작은 여자한테는 사랑스럽다고 아첨한답니다...”
레포렐로에게 엘비라를 떠넘기고 도망친 돈 조반니는 지나가다가 마을 결혼 잔치에서 새 신부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시골처녀지만 대담하고 애교가 넘치는 체를리나. 신랑 마제토를 따돌리고 돈 조반니는 그녀를 유혹해 정사를 벌일 곳으로 데려가려 한다.
“거기 가서 그대 손을 내게 건네고 ‘예스’라는 대답을 들려줘요.”라는 돈 조반니의 유혹에 체를리나는 “그러고 싶지만 망설여지네요. 행복에 대한 예감으로 가슴은 설레지만 제 신랑 마제토는 어쩌구요.” 하는 아리송한 대답으로 줄다리기를 시도한다. 돈 조반니의 진심을 떠보는 영악한 체를리나. 그러나 역시 희대의 바람둥이는 경험 없는 처녀보다 한 수 위다. “내가 그대의 운명을 바꿔주지.” 돈 조반니의 이 한 마디에 체를리나는 즐겁게 무너진다.

돈 조반니에게 당한 안나, 오타비오, 엘비라, 체를리나, 마제토는 다 함께 보복을 하려고 기회를 노리지만, 그의 손에 죽은 기사장의 유령이 먼저 복수를 하러 온다. 묘지에서 돈 조반니가 장난삼아 기사장의 석상(石像)을 초대했더니, 그 석상이 진짜 저녁식사 자리에 나타난 것.
유령은 돈 조반니에게 거짓과 사기로 점철된 바람둥이의 삶을 회개하라고 명하지만 돈 조반니는 끝까지 회개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버티다가 결국 지옥불로 떨어진다. 사회규범과 질서를 거부하고 ‘쾌락의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주인공과 어떻게든 그를 길들이려는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대립은 이처럼 후자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관객의 가슴에 남는 가장 매력 있는 주인공은 역시 회개하지 않는 악당이다.
서울시오페라단(예술감독 박세원)은 6월 18일부터 22일까지 세종M시어터에서 '돈 조반니'를 공연한다. 이 작품은 원래 대극장용 오페라가 아닌 만큼, 규모가 작은 M시어터에서 모차르트 시대 초연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 기대된다. 이경재 연출로 김민석, 박경종, 나승서, 강혜정 등 젊은 성악가들이 출연하고, 최승한의 지휘로 경기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는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