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이 칠해지는 순간 일상의 가면이 벗겨진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06.05 00:11 | 수정 : 2008.06.05 07:01

비언어극 '블루맨 그룹' 맷 골드먼 인터뷰

파란 물감을 뒤집어쓴 세 남자,《블루맨 그룹》(Blue Man Group)이 6월 한국땅을 처음 밟는다. 몸은 파랗게 칠하고 입은 꽉 다문 채 타악 연주와 영상, 코미디로 무장한《블루맨 그룹》은 1991년 미국 뉴욕 초연 이후 이미 1200만 명이 본 세계적 비(非)언어극이다. 복제된 공연팀만 24개에 달하며 지금도 세계 9개 도시에서 상설공연 중이기 때문에《블루맨 그룹》은‘공연 기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텔 컴퓨터의 상업 광고에 등장했을 정도로 주목 받는 디자인과 철학을 지닌 연극이기도 하다. 원조(元祖) 블루맨 3총사 중 한 명으로 현재 이 공연 기업의 CEO인 맷 골드먼(Goldman)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블루맨 그룹》의‘맨얼굴’을 공개했다.

◆왜 블루인가
“그저 블루맨이 우리에게 왔다”는 식의 공식 멘트 뒤엔 다른 비밀이 감춰져 있었다. 그 물감을‘블루맨 블루’ 라 부르는 골드먼은“블루는 땅, 하늘, 물의 색”이라고 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마스크(mask)가 아니다. 블루맨 블루를 칠하는 순간 우리는 마스크를 쓰는 게 아니라 거꾸로‘우리가 쓰고 사는 마스크를 벗겨내는 셈’이다.”헤어스타일과 신체적 특징, 패션을 지우면 남는 것은‘인간’이란다. 원조 블루맨은“처음엔 낯설어하는 관객도 공연중반쯤엔 블루맨에게서 자신의 본래모습을 보게 된다”고 했다.

세 명의 블루맨이 PVC파이프로 만든 타악기(드럼본)를 연주하고 있다.《 블루맨 그룹》공연에는 낚싯대 모양의 에어폴 등 그들이 발 명한 악기가 많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눈뜸
그는‘새로운 눈(fresh eye)’을 여러 번 강조했다.“ 우린 모두 일상을 산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자고…. 세상은 아주 빨리 변한다. 그러나 농경사회건 정보화사회건 인간 자체는 그대로다. 세상의 속도를 거부하는 게 이 공연이다.”골드먼은 “이방인(블루맨)이 우리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말(言)을 버리다
블루맨은 말이 없다. 타악 연주로 무대를 채우고 영상으로 자막이 흐를 뿐이다.“ 《블루맨 그룹》을 구상한 1980년대 후반 뉴욕의 공연들은 수다스럽고 독백도 길었다. 그것에 저항하면서 가장 보편적인 언어인 타악을 집어넣었다”는 설명이다. 무대 중앙에는 인간의 내장(內臟)
같은 PVC파이프들이 엉켜 있다. 블루맨들은 이것을 두드려 음악을 빚어내면서 관객과 대화한다. 드럼을 칠 때 물감이 튀어오르는 등 소리를‘보고’색을‘듣는’장면도 있다. 골드먼은“폐(廢)수도관으로 악기를 만드는 순간 우리는 PVC파이프 세계 톱3 연주자가 됐다”며 웃었다.

◆3
내한공연은 대극장용 버전인《블루맨 그룹—메가스타 월드투어》다. 8인조 라이브 밴드와 함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를 블루맨은 여전히 3명이다. 왜 3을 고집할까. “그룹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블루맨 3명은 때론 둘(2)과 하나(1)로 분리된다. 하나가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인데 어떤 경우엔 하나가 나머지 둘을 이긴다. 그렇듯 3은 이 공연의 짜임새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숫자였다.”

◆현지화
《블루맨 그룹》투어공연은 그 나라 문화를 반영하는 현지화 전략을 쓴다. 세상에 툭 떨어진 블루맨들이 록 스타가 되는 이야기에는 관객이 참여해야 완성되는 장면이 많다. 한국 관객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대목에서는 가수‘이효리’와‘태진아’ 등의 이름을 동원해 웃기는 상황을
연출하고, 우리 동요도 삽입한다. 원조 블루맨은“축구 경기장에서와 같은 응원이 필수적인 공연”이라며 한국 관객들의 능동적 참여를 당부했다.

▶10~2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541-6235

맷 골드먼은“블루맨 분장에만 1시간이 걸 린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맷 골드먼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일하다 블루맨이 됐다. 초연부터 3년간 1284회 공연했다는 그는 예상보다 키가 크지 않고 마른 체형이었다. 골드먼은 "5개의 단순한 음(音)밖에 안 나오는 PVC파이프를 두드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줄은 몰랐다"고 했다. 블루맨은 공연 중 미소조차 금기(禁忌)다. 웃음이 많은 그에게 그런 실수담을 캐묻자 "답할 수 없다"며 또 웃었다.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역시 3이었다. '공연에 쓴 PVC파이프를 다 연결하면 길이가 얼마쯤 될까'라는 질문도 "지구와 달을 3번 왕복할 수 있다"는 농담으로 피해갔다. 현재 72명의 블루맨이 활동 중이다. 흑인도 있고 여성도 있다. 체형과 연주 실력을 뺀 블루맨의 자질로는 ▲공연 중 늘 진짜의 모습(being real)을 보일 것 ▲눈빛 연기력을 잘 구사할 것 ▲스타를 꿈꾸지 말 것 등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