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귀국'하는 한국산 현대음악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6.04 23:39

작곡가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 세계 초연 11년 만에 국내 초연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에게 자신의 작품 〈피아노 협주곡〉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식' 같은 것이다. 지난 1997년 BBC 웨일스 국립 오케스트라의 세계 초연 당시부터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제목은 피아노 협주곡이지만 사실상 전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으로 들릴 만큼, 테크닉이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까다로워요. 독주 악기인 피아노는 물론이고 플루트 단원에게는 마치 플루트 협주곡, 바이올린 단원들에게는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느껴질 정도로 연주가 쉽지 않은 거죠."

그래서 세계 초연 당시에도 현악 단원을 제1·2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악기별로 각각 2명씩 10명으로 줄여서 연주했다. 진씨는 "편성이 크면 같은 악기 내에서도 서로 맞추기 힘들어 소편성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199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같은 곡을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불과 공연 1주일을 남겨놓고 악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솔로 부분이 너무 어려워서 이번에는 연주가 힘들겠다"며 사실상 거절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그래서 초연 이후 10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불과 6차례 연주됐을 뿐이었다.

하지만 진은숙은 '작곡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 상(賞)을 안겨줬던 자신의 출세작 〈바이올린 협주곡〉과 비교하며 "솔직히 작곡가 입장에서는 〈피아노 협주곡〉이 훨씬 더 잘 쓴 곡이라고 생각한다"며 애착을 나타냈다.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이 세계 초연 이후 11년 만에 한국에 '지각 도착'한다. 오는 13일 서울시향의 현대 음악 연주회인 〈아르스 노바〉 시리즈에서 국내 초연된다.
작곡가 진은숙(가운데)의〈피아노 협주곡〉을 한국 초연하는 지휘자 스테판 애즈버리(왼쪽)와 피아니스트 빌헴 라추미아(오른쪽)./서울시향 제공

스테판 애즈버리(Asbury)가 지휘봉을 잡고 빌헴 라추미아(Latchoumia)가 피아노를 협연한다. 라추미아는 지난 2006년 프랑스 오를레앙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콘서트에서 진은숙의 협주곡을 직접 선택했다. 진은숙은 그에 대해 "피아니스트 가운데 보기 힘든 흑인이지만, 다른 연주자들이 난해한 현대 음악을 연주할 때 악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거의 암보(暗譜)를 하면서 자유롭게 음악에 접근할 줄 아는 연주자"라고 말했다.

라추미아는 15일 〈아르스 노바〉 실내악 콘서트에서는 현대 음악의 진풍경을 보여준다. 장난감 피아노와 실제 피아노를 연주한 뒤, 피아노 뚜껑을 열고 그 속의 현을 직접 튕기거나 뜯는 '1인 3색' 무대를 선보인다.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13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관현악 콘서트, 15일 오후 7시30분 세종체임버홀 실내악 콘서트, (02)3700-6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