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청년의 손끝에서 '소년 바흐'가 노래하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6.04 23:36

피아니스트 임동혁 '골드베르크 변주곡'

그가 바흐(Bach)로 돌아오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23). 세계 굴지의 콩쿠르 입상자 명단에 모두 이름을 올렸고, 약진하고 있는 10~20대 젊은 피아니스트 그룹의 선두에 서있긴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 따라다니던 작곡가는 언제까지나 쇼팽(Chopin)이었다.

'음악의 아버지'는 그에게 탈출구일까, 막다른 골목이 될까. 그는 음반사 EMI를 통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하며 답변을 내놓았다.

1955년 당시 23세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한여름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코트 차림과 생수를 들고 나타나 녹음한 뒤부터, 이 작품은 모든 청춘 피아니스트들을 사로잡은 표상이 되어 왔다.

당시 굴드의 비법이 속주(速奏)에 있었다면, 이번 임동혁은 거기에 노래를 추가했다. 변주곡의 처음과 끝에 말뚝처럼 단단하게 박혀서 작품의 기본 성격을 잡아주는 곡이 바로 〈아리아(Aria)〉다. 임동혁의 오른손은 첫 곡 아리아에서 특유의 유려함과 감수성으로 트릴(trill)에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바흐〈골드베르크 변주곡〉음반./EMI 제공

별도의 속도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첫 번째 변주부터 임동혁은 건반을 고속도로 삼아 무한 질주에 들어갔다. 툭툭 끊어서 칠 때조차 그의 손짓은 가볍고 경쾌했다. 후반의 20번대 변주들에서 다소 집중력이 떨어진 점은 아쉬웠다. 7번째와 9번째 변주처럼 속력을 멈추고 느린 템포로 자신을 돌아볼 때 임동혁의 건반에선 청춘이 묻어 나왔다.

전체적으로는 엄숙하거나 진중하기만 한 바흐가 아니라 오히려 서정성을 녹여 넣은 '소년의 바흐'에 가까웠다. 최고의 명연(名演)인지는 시간이 일러주겠지만, 연주자 자신을 굳이 감추지 않고 솔직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개성 만점의 음반이라는 점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