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6.04 18:29
형, 동생 하는 끈끈한 사이에서 제작자, 연출가, 배우라는 묘한 관계가 된 세 남자가 모였다. ‘연극열전 2’의 5번째 작품인 연극 <돌아온 엄사장>의 공연을 열흘 앞두고 만난 프로그래머 조재현과 연출가 박근형 그리고 배우 고수. 연극 이야기에 소주가 빠지면 섭섭하지 않겠냐며 이야기의 반주(伴奏) 겸 저녁식사의 반주(飯酒)가 곁들어진 자리에는 진지하고 유쾌한 취중진담이 밀려오고 쓸려가기를 반복했다.
플레이빌(플) : ‘연극열전’이 5번째 작품까지 왔네요. 연극도 흥행할 수 있음을 보여줬지만 매번 연예인 캐스팅이니, 상업적인 작품이니 하는 탐탁지 않은 시선도 있잖아요.
조재현(조) : 숨 가쁘게 달려왔죠. 단체의 기금 없이 민간 차원에서 연극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밖에서 볼 때는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죠. 또 하나 깜짝 놀란 건 ‘연극열전’을 운영하는 스태프들조차 공연이 잘되는 것을 수줍고 낯설어 한다는 거예요. 난 연극 전문가가 아니니 쑥스러울 이유도 없고, 이걸로 수익을 내야만 앞으로의 유지가 가능하다는 당당한 이유가 있는데…. 얼마 전 포장마차에서 한 연출가를 만났는데 ‘연극열전’의 의미를 높게 사면서도 ‘연극인들과 같이 못 가는 게 아쉽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근형이 형은 참 훌륭해요. 내가 있어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내가 있든 없든 고수가 있든 없든 연극을 만들어 내는 분이니까.
박근형(박) :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나오니까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거죠. 그렇다고 관심이 덜 간 쪽이 피해를 보는 건 아니잖아요. 이 당구장에 다니다가도 저 당구장에 예쁜 아가씨가 새로 왔다면 거기로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하거든(웃음). 더불어 잘 되는 방법도 분명 생각해 볼 문제지만 누구 때문에 누가 피해 본다는 오해는 없었으면 해요.
조 : 대학로에 리바이벌 연극만 성행하고 있는데 ‘연극열전’은 새로운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소개하고 있잖아요. 아직 번역 안 된 작품도 꽤 많은데 너무 상업적인 작품만 포진한 거 아니냐는 비판은 말이 안 돼요. 나도 아직 대본을 다 못 봤는걸요. 궁극적으로는 저 역시 ‘연극열전’을 연극인들과 같이 가는 프로젝트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을 타깃으로 한 <늙은 도둑 이야기> 같은 작품도 있어야 하고, 묵직한 <블랙버드> 같은 작품도 있어야 하는 거란 얘기죠.
플 : <돌아온 엄사장>은 ‘연극열전’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인가요?
박 : ‘연극열전’의 제안이 있기 전에 <선착장에서>라는 작품을 했는데 재미있는 부분도 많았지만 아쉬운 점들이 있어서 그 빈 곳을 채워 보고 싶었어요. 주인공인 엄효섭 배우와 이 작품을 보강해서 후속작을 만들어 보자며 일단 ‘돌아온 엄사장’이라는 제목을 지어 뒀거든요. 단원들은 제목이 유치하다고 시큰둥했지만 한번 들으면 안 잊어버리고 좋지 않나요(웃음).
조 : 사실 저는 <청춘예찬>을 하자고 했는데 근형이 형이 <돌아온 엄사장>을 제안하더라고요. 시놉시스만 있는 상태였지만 박근형과 극단 골목길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수락을 했죠. 그런데 근형이 형 대본은 공연 직전까지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걸로 유명하거든요(웃음). 내가 뭘 믿고 선뜻 응했나 몰라. 하하.
박 : 의도가 강하면 작품이 무거워지잖아요. 이번 작품에는 포항 사투리와 욕이 난무하는데 상스러운 게 아니라 밝고 가벼운 터치가 되어 작품을 살려 줄 거예요.
플 :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돌아온 엄사장>은 ‘연극열전’의 단독 제작이 아니라 극단 골목길과 함께 가는 형식이라며 앞으로 지향할 방법이라고 하셨는데요.
조 : 예전에 <청춘예찬>을 보면서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어떤 분일지 참 궁금했었어요. 결국 근형이 형을 만났고, <경숙이, 경숙아버지>를 통해 같이 작업도 하게 됐지요. 누구보다 골목길의 방식을 잘 이해하기에 연출료와 개런티 대신 제작비를 통으로 드렸어요. 진행비나 세트 등을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랄 텐데 공연이 잘 되면 꼭 수익을 나눠 드리려고요. 이런 방법이 연극인들과 화합할 수 있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요.
박 : 사실 저야 고맙죠. ‘연극열전’과 극단 골목길의 공동 제작이라고 하지만 재현 씨는 전적으로 저를 믿고, 제작 과정에 거의 관여 안 하는데 그게 은근히 더 부담된다니까. 하하.
플 : 제대한 고수 씨가 <돌아온 엄사장>에 참여하면서 더 관심이 집중되는데요. 골목길의 지방공연도 따라가고, 연습실 청소도 도맡아 하면서 이제 골목길 단원이 다됐다지요(웃음).
조 : 제대 후에 연극을 해보라고 권했던 적이 있는데 골목길 공연에 고수를 데려간 게 인연이 되었죠. 고수라는 사람에게는 골목길이라는 극단이 맞았던 거고.
고수(고) : 하하. <내 동생의 머리를 누가 깎았나>를 보면서 골목길과 가까워졌어요. 연습부터 공연까지 너무 좋아서 여러 번 봤죠(웃음).
박 : 고수가 왔다갔다는 둥, 울면서 보고 갔다는 둥, 나한테도 들리거든요. 공연을 한 서너 번 봤지?
고 : 솔직히 몇 번을 갔는지는 기억도 안 나요. 단원들이 경기도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뒤풀이까지 따라간 적도 있어요. 고맙게도 신파티나 쫑파티를 할 때마다 연락을 주더라고요.
조 :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었을 텐데 골목길이 고수를 구해 준 거네. 하하. 고수는 강남 나이트나 가라오케와는 도무지 안 어울리잖아요. 고수가 정단원이라면 나는 준단원쯤 되려나.
고 : 극단에는 선배들도 있고 후배들도 있잖아요. 선배들은 처음에 저를 불편해 하시기도 했고, 저도 어디에 어울려야 하는지 고민했었죠. 동생들과 친해지기는 했지만 제가 신입 막내인 것이 맞아요. 하하. 무대를 만들고, 전단도 붙여 보고, 공연 끝나고 마무리도 하고, 이것저것 단원들을 따라서 돕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박 : 고수가 궂은일은 도맡아 하고 있어요. “이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하고 물을 때면 저 친구가 순진한 건지 천진한 건지 헷갈린다니까요.
고 : 어쨌든 골목길에서 저를 따뜻하게 받아 주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온 거죠.
박: 작품 때문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만났어요. 우리 단원들과 알아서 연락하고 지방에도 함께 가고 지금까지 과정은 좋았거든요. 남은 숙제는 이 과정의 결과물을 제대로 완성하는 것이죠. 본인이 연극에 대한 열정이 있으니 여기까지 왔겠지만, 이렇게 만난 이상 마지막까지 잘 빚어서 관객한테 선보여야죠. 연극을 택한 걸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고 : 이제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는데 아직 해결이 안 된 부분이 있어서 제가 나오는 부분은 제대로 연습을 못하고 있어요(웃음). 하지만 선배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배우고 있는 거 같아요.
박 : 배우에게 가장 큰 악몽은 무대에서 대사를 홀랑 까먹는 건데 내색은 안 하지만 고수 마음이 지금 딱 그럴 거예요. 작품도 좋고 사람도 좋지만 최종 목표는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거잖아요. 그전까지 부족하거나 넘치는 부분을 조절해 주는 게 저의 몫이고요. 연출은 배우의 또 다른 매니저인 셈이죠. 배우가 무대 위에서 자신감을 갖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는. 다그친다고 안 되던 게 갑자기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기다려 주기도 해야죠. 경기를 앞둔 감독처럼 시합 직전에는 ‘잘해라’, ‘파이팅’ 등 다독여 주는 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플 : 그렇게 고된 과정을 거듭하면서도 연극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 : 일단 연극하는 사람들이 좋은 거죠. 사람들 사이에는 여러 감정들이 있잖아요. 사랑, 믿음 때로는 배신도 있을 수 있고. 어떤 분야보다도 인간적이라고 느꼈어요.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하다고 생각하는데 살다 보면 뭔가가 사람들 사이를 분류하고 규정해 버려요. 가끔은 그게 참 슬펐는데 골목길에서는 그런 걸 못 느꼈어요.
박 : 배우가 한 인물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재미있잖아요. 고수는 연극으로 치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예요. 무대에 몇 십 년을 선 배우들도 처음 카메라 앞에 서면 자기가 스크린에 어떻게 비칠지 모르니까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요. 그건 경험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다양한 체험을 통해서 전천후 배우가 되는 과정인 거죠. 저는 배우가 무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고.
고 : 원한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대중 앞에 던져졌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떠밀려 여기까지 와 있더라고요. 일상의 나는 숫기가 없어서 남들이 나에게 집중하는 게 무서울 때도 있어요. 연극을 하면서 느낀 건 연기에 관한 모든 게 전과 너무 다르다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못 잡겠어요. 요즘은 차 키나 지갑을 어디에 뒀는지도 잊어버릴 만큼 생각이 많아요.
박 : 예를 들어 아주 성실한 농부가 있어요. 유실수를 심고 좋은 비료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하는데 중요한 건 그 나무의 과실이 맺어져야 한다는 거잖아요. 물론 열매가 맺는 데는 날씨 등 약간의 변수야 있겠죠. 하지만 자기가 열심히 땀 흘리며 가꾸면 과실이 작거나 못생겨도 후회 안 하지요. 고수는 분명 잘 해낼 거예요.
고 : 과정도 정말 중요하지만 솔직히 무대에서 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두려워요. 어떻게 말하고 얼마만큼 소리를 내고 또 움직여야 하는지… 실제로 서 봐야 알겠지요(웃음). 형, 근데 무대에서는 소리를 얼마나 크게 내야 해요? 진짜 감이 안 와요.
조 : 약간 크긴 해야 하는데 “뭐라카노~” 이 정도? 오랜만에 하려니까 나도 모르겠다. 발성도 중요하지만 발음에 더 신경을 써야지. 제가 고수보다 어릴 때 선배들이 “연극하면서 왜 딴생각을 하냐”고 많이 혼냈어요. 고수에게도 연극에 몰입하는 건 좋지만 이 시기는 굉장히 중요하니까 드라마나 영화 등 들어온 시나리오도 좀 읽으라고 하죠. 그런데 지금 이 녀석 머릿속에는 연극밖에 없는 것 같아요. 푹 빠져버렸어.
고 : 재현이 형은 TV드라마 <피아노>에서 아버지로 만나 지금은 형이 됐잖아요. 실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지만 남보다 조금은 더 생각해 주시는 거 같아요(웃음). 하나 확실한 것은 재현 형이 저를 무대로 이끌었다는 거예요. <피아노> 촬영을 시작할 무렵 꿈에 형이 나와서 “넌 무대에 서야 해”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 후로 제 무의식 속에 그 말이 항상 존재해 왔던 거 같아요.
플 : 골목길 단원들 중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분도 많잖아요. 연출님은 배우들의 외부 활동에 관대하신가 봐요.
조 : 형은 굉장히 합리적인 분이세요. 오히려 단원들에게 영화나 드라마 활동을 장려하는 쪽이니까. 생활이 돼야 연극도 할 거 아니냐며.
박 : 저는 배우들에게 그런 간섭 안 해요. 연극쟁이들 생활 뻔하잖아요. 대신 이런 말을 많이 하죠. “사회는 열심히 하는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네가 잘하면 영화감독, PD들이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생활을 핑계로 다른 길을 궁리하기 전에 연기 하나만이라도 잘해 봐라” 요즘에는 더블 캐스팅이라는 좋은 제도도 있으니 배우에게는 선택의 폭이 더 다양해졌죠.
플 : 박근형 연출가의 작업방식은 독특하기로 유명하잖아요. 아무리 친하다 해도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식은땀이 날 텐데요.
조 : 골목길 작품은 오프 대학로 소규모 극장에서 먼저 인큐베이팅을 해서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일주일 정도는 반값만 받고 리허설 형식으로 보여주는 거죠. 한 달 정도 숙성시켜 나온 골목길의 맛은 따라갈 집이 없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니까. 이번에 ‘연극열전’에 같이하자고 하고서는 시간에 구속받아 힘들어 하실까 봐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근형이 형의 작업방식을 최대한 존중해 주려 해요.
박 : 전 그냥은 작품 못 써요. 배우를 만나서 술도 마시고, 같이 MT도 가고 그 배우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런 점들을 작품에 반영시키죠. 제게는 이 방법이 효율적이고 좋지만 사실 그 밑바탕에는 제가 연출이나 극작에 관한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해 나온 부족함이 깔려 있어요. 배우에게는 누구나 연출적 기질이 있고 극작가적 기질이 있거든요. 어느 정도 선을 열어놓으면 막막한 부분이 있을 때 배우로부터 좋은 영감을 받기도 해요. 어차피 공동 작업이니까 공연 며칠 전까지 체계만 잡혀도 배우들이 편한데 제가 그걸 못해서 문제죠.
플 : 맞아요. 연극은 같이 만들어 가는 예술이잖아요.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박: 예전에 우리 극단 공연할 때 배우들한테 “공연 잘 끝났나” 물어보면 “재현이 형이 와서 술 사주고 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차후의 무언가를 위한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연극을 정말 좋아해서 그런다는 걸 알아요. 재현 씨가 1985년에 극단 ‘종각’을 만들었던 걸 기억하거든요. 이 사람은 연극을 사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정도는 알죠. ‘연극열전’의 프로그래머를 자청한 것에는 홍기유라는 후배에 대한 애정도 있었겠지만, 분명 ‘관객은 들어오는데 왜 적자인가’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거예요. 배우 조재현이 아닌 기획자 조재현이 앞으로 ‘연극열전’을 어떻게 개선시켜 나가느냐가 관건이죠. 비록 민간이 하고 있지만 ‘연극열전’은 ‘서울연극제’, ‘공연예술제’ 못지않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연극 프로젝트거든요. 거기에 참여시켜 줘서 고맙고, 이 프로젝트가 지속됐으면 좋겠어요. 참여하는 이상 결실도 잘 맺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요. 예술이라 하면 거창하지만 새로운 연극문화를 위해 ‘한 꺼풀’ 벗고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어 줬으니 동지로, 벗으로 정말 고맙죠.
조 : 사실 우리끼리 있으면 근형이 형이 ‘연극열전’의 문제점이나 따끔한 충고를 가장 많이 해줘요(웃음). 나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부분이고, 또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수는 마인드 자체가 골목길이란 극단과 분명 맞는 부분이 있어요. 선배로서 나에 대한 신뢰도 있겠지만 근형이 형의 작품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큰 거 같아요. 공연이 열흘 남은 상황에서 내가 이 녀석 입장이라면 안절부절못할 텐데 신기하게도 차분하네요.
고: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열심히’죠. 여기서 생활하면서 뭔지는 모르지만 이미 무언가를 얻고 있거든요. 마음부터 편하니까. 같이 고민하고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연극을 통해 특별히 뭘 배우겠다,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실수도 저에게는 소중하거든요. 그냥 편하게, 연예인 고수가 아니라 연극무대에 처음 서는 신인이라 생각하고 봐 주시기를 바랄 뿐이지요.
조: ‘연극열전’은 전해 12월에 시작해서 이듬해 1월까지, 14개월은 공연하고 10개월은 쉬는 시스템으로 돌아갈 거예요. 쉬는 10개월 동안은 ‘연극열전 베스트 3’을 공연할 거고요. 앞으로를 위해서 연극으로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우량 법인을 만들고 싶어요. 이런 형태가 자리를 잡으면 후발 주자들도 생길 것이고 연극의 파이도 커지겠지요. 그러려면 잠재 관객들을 늘려야 하는데 말초적인 부분을 건드려 주는 것도 좋지만 지적인 부분도 같이 건드려 주는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해요. 하지만 대중성이 강한 작품은 연장을 해도 매진사례인 반면 조금만 무겁고 심각해도 고전을 면치 못하더라고요. 돌파구를 찾고 싶지만 현실은 아직 냉정해요. 그게 제 중간 평가예요.
연극 한 편을 보고 그 시대를 고민하고 아파할 수 있다면 이보다 훌륭한 예술의 기능이 어디 있겠는가. 학창 시절 이강백의 <결혼>을 본 후 배우로 진로를 바꾼 것처럼 처음 접하는 작품이 ‘좋은 연극’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조재현과 한 사람의 일생을 바꿀 수도 있는 연극을 하고자 몸을 낮춘 고수, 볼 때는 편하고 재미있지만 공연장을 나올 때면 가슴 한편을 묵직하게 만드는 박근형이 만들어 갈 <돌아온 엄사장>이 ‘연극열전’의 또 다른 성공사례가 되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