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 오케스트라의 중심에 '아시아산(産) 선율'이 넘친다

  • 김성현 기자
  • 정남이 인턴기자

입력 : 2008.05.28 23:01

시카고 심포니 등 명문 '빅5'에 한·중·일 연주자들 대거 활약

미국 명문 오케스트라에 '황색(黃色) 바람'이 거세다.

동부 지역에 밀집해 있는 명문 '빅 5' 가운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은 대만계인 로버트 첸(Chen), 뉴욕 필하모닉의 부악장은 한국계인 미셸 김이 맡고 있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부악장은 요코 무어(일본)와 이정민(한국)이 각각 맡고 있으며, 보스턴 심포니에선 엘리타 강(한국)이 부악장으로 활동 중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아예 한국계 단원들이 음악 감독인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주변을 둘러쌀 정도다. 악장 데이비드 김, 제1부악장 줄리엣 강(바이올린), 비올라 수석 장중진 등이다. 30·31일 내한 무대를 갖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에게 '아시아 돌풍'의 이유를 물었다.

우선 비올라 수석 장중진씨는 동양인들의 강한 교육열을 꼽았다. "아이들이 똑같이 피아노를 해도 연습량부터 서양 아이들과는 달라요. 한국·일본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중국과 베트남까지 확산되고 있죠. 아시아 연주자들이 지금까지는 독주(獨奏) 위주로 연습을 해왔지만, 실내악과 관현악에 점점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연관 깊고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이 끝난 뒤 악장 데이비드 김(왼쪽)과 비올라 수석 장중진(가운데)이 음악 감독인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오른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선일보 DB

미국 뉴욕의 줄리아드 음대와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 등 현지 명문 음악학교에 진학한 아시아 음악인들이 졸업 후 자연스럽게 뉴욕 필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 현지 교향악단에 진출하는 것도 '황색 바람'의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13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예비학교와 커티스 음악원 등을 거친 장중진씨와 커티스와 줄리아드 등에서 수학한 한국인 2세 줄리엣 강도 같은 경우다. 줄리엣 강은 "한국·중국·일본 연주자들이 학교에서부터 일찌감치 빼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이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잡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장씨도 "커티스 음악원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빼어난 음악 인재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고 있을 만큼 학교와 교향악단 사이에 협력이나 유대가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을 자처하는 유럽의 명문 교향악단에는 상대적으로 동양 연주자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은 반면, 다인종(多人種) 문화에 익숙한 미국 오케스트라에서는 아시아 단원들이 약진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또한 유교 문화권에서 자라난 아시아 단원들이 오케스트라 같은 조직 생활에도 잘 맞는다는 것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악장 데이비드 김은 "물론 음악적 실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아시아 단원들은 직책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음악가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장유유서(長幼有序) 전통이 있고, 명예를 중시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 빠르게 적응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30·31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02)399-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