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현대미술 '메이저 리그'로 가고 있다"

  • 홍콩=김수혜 기자

입력 : 2008.05.25 23:24

홍콩크리스티서 中 쩡판즈 작품 105억원에 팔려
불과 반 년 만에 사상 최고 낙찰액 기록 깨져
이브닝세일, 아시아 현대미술 작품으로만 구성해

24일 밤 8시, 홍콩크리스티 경매장을 메운 관객 1000 여명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

"6600만 홍콩달러, 안 계십니까? 네, 감사합니다. 6700만 홍콩 달러, 안 계십니까? 네, 감사합니다. 더 부르실 분, 계십니까?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더 부르실 분, 계십니까? 그럼, 6700만 홍콩 달러에 낙찰됐습니다."

심홍색 비단 재킷을 입은 노련한 경매 진행자 앤드리아 피우친스키(Fiuczynski)가 방망이를 들어 "땅, 땅, 땅!" 책상을 세 번 내리쳤다. 숨 죽이고 지켜보던 객석에서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중국 작가 쩡판즈(曾梵志·44)의 1996년작 〈가면 시리즈 6번〉이 수수료 등을 포함해 7536만 홍콩달러(105억원)에 팔렸다. 아시아 현대미술 역대 최고 기록이다. 기자석을 메운 각국 기자 수십 명이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고, 신기록 현장을 바쁘게 적어갔다. 기존 최고 기록은 지난해 11월 홍콩 크리스티 추계 경매 때 7420만 홍콩달러(103억원)에 팔린 중국 작가 이궈창(51)의 대형 드로잉이었다.
24일 밤 홍콩크리스티 경매에서 아시아 현대미술 사상 최고가인 7536만 홍콩달러(105억원)에 팔린 중국 작가 쩡판즈의 유화〈가면 시리즈 6번〉. 3.6×2m. 1996년작. /홍콩크리스티 제공
이날 경매는 이브닝세일(Evening Sale)이었다. 이브닝세일은 말 그대로 저녁 때 하는 경매다. 비교적 가격이 낮은 작품이 대량으로 거래되는 데이세일(Day Sale)과 달리, 이브닝세일에선 스타 작가의 대작 30~60점이 고가에 거래된다. "누구누구의 작품이 사상 최고가에 낙찰됐다"는 뉴스가 터져 나오는 곳은 대부분 이브닝세일이다.

23일 열린 홍콩크리스티 이브닝세일은 두 가지 점에서 아시아 미술시장 관계자들을 흥분시켰다. 첫째, 불과 반 년 만에 사상 최고 낙찰액 기록이 깨졌다. '중국미술 거품론'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시장은 여전히 활황이고 중국미술은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쩡판즈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중국 스타 작가 중 한 명인 위에민준(岳敏君·46)의 작품 〈굉굉(轟轟)〉도 그의 작품 중 최고가인 5408만 홍콩달러(75억원)에 낙찰됐다.

둘째, 홍콩크리스티가 사상 처음으로 중국, 한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현대미술 작품 35점으로만 이브닝세일을 구성해 그 중 32점이 낙찰됐다. 낙찰 총액은 3억1738만4000 홍콩달러(444억3000만원)였다. 에릭 창(40) 홍콩크리스티 수석부사장은 "아시아현대미술 시장은 주목할 만한 속도와 규모로 성장해왔다"며 "우리가 이브닝세일을 도입한 것도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술시장 전문가인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한 마디로 아시아 현대미술이 '중저가 마이너 리그'를 벗어나 '고가 메이저 리그'로 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국 작품도 호조를 보였다. 홍경택의〈도서관Ⅱ〉(6억3000만원), 김창열의 〈물방울〉(5억8000만원), 김동유의 〈장미와 폭발〉(4억3000만원), 전광영의 〈접합〉(3억원), 최소영의 〈도시〉(2억5000만원) 등 다섯 점이 모두 추정가를 웃도는 가격에 낙찰됐다.
24일 밤, 홍콩크리스티 경매 이브닝세일이 시작되기 앞서 관객들이 중국 작가 위에민준의 유화 등 출품작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