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않는 소년의 열정으로 지휘봉을 잡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5.21 23:17 | 수정 : 2008.05.22 09:04

로테르담 필하모닉 음악감독 야닉 네제 세겐

어릴 적 소년은 성가대 합창단원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노래 부르는 것도 누구보다 즐겼다. 하지만 10세 때 성가대에 서는 순간, 소년의 꿈은 바뀌고 말았다. "합창단 맨 앞에 서서 우리를 이끌며 음악을 빚어내는 사람을 단번에 발견했죠. 지휘자였어요."

23년이 흐른 올해, 그는 90년 역사의 네덜란드 명문 오케스트라인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새 음악 감독으로 지명됐다. 캐나다 출신의 33세 지휘자 야닉 네제 세겐(N�zet-S�guin)이다. 올 여름에는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잘츠부르크 음악제 데뷔 무대까지 잡혀있다.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미 10세 때부터 나는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지금은 그 꿈대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네제 세겐은 런던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유롭스키(Jurowski·36), 스웨덴 방송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는 다니엘 하딩(Harding·33),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차기 음악 감독으로 지명된 구스타보 두다멜(Dudamel·27)과 더불어 20~30대 '영 마에스트로' 열풍의 한복판에 서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위대한 전통을 지닌 교향악단의 음악인들과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라면서도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젊고 신선하면서도 진지함을 지닌 지휘자들과 일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명문 교향악단인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으로 지명된 33세의‘영 마에스트로’야닉 네제 세 겐. 그는“10세 때부터 지휘는 나의 꿈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CMI 제공

하지만 그는 "나이보다는 결국 나 자신이 오케스트라에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했다. 지휘자는 레퍼토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불과 25세에 캐나다의 몬트리올 오케스트라에 취임한 뒤 말러 교향곡 4번,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등을 의욕적으로 녹음(ATMA)하며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는 지휘자 이전에 피아니스트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2004년 한국의 카운터테너 이동규의 독집 음반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았던 주인공이 바로 그다. 네제 세겐은 "음악을 색다르면서도 친밀하게 전달하는 그의 음성에 매혹됐으며 지금도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네제 세겐의 청년 시절 스승은 지난 2005년 타계한 명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Giulini)다. 줄리니는 1978년부터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을 맡으면서 당시 25세의 정명훈을 부(副)지휘자로 임명한 것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하다.

네제 세겐은 "어릴 적 줄리니의 음반을 들으면서 언젠가 지휘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이탈리아에 피아노 콘서트를 갈 때 용기를 내어 그에게 편지를 보낸 뒤 허락을 받아 1년간 지휘 현장을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네제 세겐은 "은퇴 직전의 노장을 사사한 것은 내 삶에서 가장 큰 행운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는 인간적으로도 수수하고 너그러우면서도 특별한 존재였다"고 기억했다.

네제 세겐은 다음달 로테르담 필하모닉을 이끌고 첫 내한한다. 이 콘서트에서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과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협연 윤디 리) 등을 들려준다.

▶로테르담 필하모닉 내한 공연: 6월 25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4만4000~14만3000원, (02)518-7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