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센바흐 지휘봉, 서울을 달군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5.18 23:12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이끌고 30·31일 내한 공연
"필라델피아에도 재능있는 한국 연주자들 많아
클래식 음악 미래는 아시아를 보면 알 수 있어"

누구나 손쉽게 그의 재림(再臨)를 이야기했다. 특히 젊은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이 새롭게 등장할 때마다 '리히테르(Richter)의 재현'이나 '리히테르의 환생' 같은 수식어를 붙였다. 1915년 태어나 1997년 숨진 러시아의 명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테르가 러시아 음악계에 드리웠던 그림자는 이처럼 길고도 짙었다.

하지만 그가 1970년대부터 꼼꼼하게 기록했던 음악 일기(정원 출판사)에서 가장 많이 주목했던 후배 피아니스트들 중 한 명은 독일계인 크리스토프 에센바흐(Eschenbach)였다. "그의 예술적 후광만으로도 작품이 한결 중후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에센바흐는 모차르트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지니고 있다"…. 리히테르는 25세 연하의 이 후배 음악가와 협연하거나 그의 실황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아낌없는 애정을 보냈다.

지금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파리 오케스트라 등 미국과 유럽 양쪽의 명문 교향악단을 책임지고 있는 지휘자로 더욱 친숙한 에센바흐. 오는 30·31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 무대를 갖는 그가 조선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우선 리히테르와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브뤼노 몽생종이 촬영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본 적이 있어요. 수 차례 저와 함께 연주했던 리히테르는 피아노만이 아니라 철학·오페라·그림까지 사실상 모든 예술 분야에 대해 애정과 감식안을 보였죠. 그는 제가 만났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인간 가운데 하나였어요."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30·31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 공연을 갖는다./세종문화회관 제공

에센바흐는 지금 지휘자로서 일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세계 언론과 평단은 전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음악 감독에서 물러나며, 파리 오케스트라 역시 2010년부터 파보 예르비에게 바통을 넘겨주게 된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7번째 음악 감독으로 취임한 그는 사실상 '재임 기간이 가장 짧은 지휘자'라는 기록을 남기고 5년 만에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는 겨울에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 투어를 떠나는 등 악단과의 관계는 지속될 것"이라며 "다만 다른 교향악단도 객원 지휘하고 오페라도 하면서 조금 더 자유로운 시간을 찾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에센바흐는 "어떤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을 맡게 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에센바흐는 랑랑 같은 젊은 아티스트의 음악적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1999년 미국의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랑랑을 처음 만난 뒤 정기적으로 협연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4번 녹음(DG)까지 마쳤다.

그는 "랑랑은 지금도 3개월마다 한 번씩 찾아와서 함께 레퍼토리를 공부하자고 한다. 랑랑 같은 빼어난 젊은 연주자들이 스스로 배움을 청하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악장 데이비드 김과 제1 부악장 줄리엣 강(바이올린)을 비롯해 비올라 수석 장중진까지 한국계 연주자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내한 무대에서도 장중진과 줄리엣 강은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악단과 협연한다. 그는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에도 재능 있는 한국 연주자들이 많다. 사실상 클래식 음악의 미래는 아시아를 바라보면 알 수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30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31일) 등을 들려준다.

▶30·31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02)399-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