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든 에세이든 피아노든… 창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5.14 23:15 | 수정 : 2008.05.15 06:27

예측불허 연주자 스티븐 허프 첫 내한공연

다음달 첫 내한하는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는 시인이자 작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팔방미인 음악인'이다. /LG아트센터 제공

#1 지난 1월 인터넷 사이트인 퍼스트라이터닷컴이 주관하는 제6회 국제 시(詩) 경연대회가 열렸다. 우승작은 영국 출신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Hough)의 시 〈얼리 로즈(Early Rose)〉였다. 다음달 1일 첫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1년 전 호텔 방에 돌어와 이메일과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응모 공고를 보고 컴퓨터에 저장해놨던 30여 편의 시 중에서 한편을 보낸 것"이라며 "실은 그 뒤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시로 그는 1000달러의 우승 상금을 받았다. 허프는 "아침에 정원으로 나가서 발견하는 자연의 황홀함을 보여주면서 운율을 시구(詩句) 중간에 녹여 넣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시가 굉장히 어렵다고 하자, 허프는 "개인적으로 제럴드 맨리 홉킨스(Hopkins)의 시를 좋아하지만 그의 시도 까다로워서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다"며 웃었다.

#2 지난해 5월 베트남 당국은 안전상의 이유로 허프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취소했다. '동성애에 대해 비판적인 가톨릭 교리를 오늘날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허프의 에세이가 자칫 정치적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이유였다.

허프는 당시 가톨릭 주간지 〈더 타블렛〉에 "노예 제도나 여성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도 역사적 제약이 있었던 것처럼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시각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대와 20대 중반 두 차례 피아니스트 대신 성직자가 되려고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던 그는 "당시 글에서 다뤘던 주제를 바탕으로 종교에 대한 책을 쓰려고 메모를 모으고 있다. 아직 쓰지는 못했지만…"이라며 웃었다. 실제 그는 사회적·종교적 의미에서 신앙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기도로서의 성경〉의 저자이기도 하다.

작가이며 시인, 40여 장의 음반을 발표한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 18세 때부터 가톨릭 교도이면서 동시에 동성애자인 허프는 섣부른 재단이나 예측을 불허하는 음악인이다.

훔멜의 〈피아노 협주곡〉이나 페데리코 몸푸의 〈피아노 작품〉 등 누구도 쉽사리 접근하지 않는 음악을 찾아내고 녹음해서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음반상인 그라모폰 상을 7차례나 수상했다.

낯설고 독특한 작품에 전념하는 '별종 음악가'로 바라볼 때쯤, 거꾸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4곡)을 녹음해서 음반사 하이페리온 역사상 최단 시간에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음반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허프는 "레퍼토리를 고르는 것은 마치 요리사가 시장 보러 나가는 것과 흡사하다. 만약 '오늘은 브로콜리가 좋다'고 하면 이걸로 무슨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맛이나 영양가는 얼마나 좋을까 고민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자신이 작곡한 〈첼로 협주곡〉과 두 편의 〈미사곡〉을 초연하기도 했다. 라흐마니노프와 프로코피예프처럼 연주자인 동시에 작곡가라는 전통을 잇고 있는 셈이다. 허프는 "아르투어 슈나벨이나 알프레드 코르토 같은 피아니스트들이 활동한 1950년대까지도 연주자는 동시에 작곡가였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이런 전통이 끊겼으며 오늘날이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리사이틀이나 음반 프로그램을 직접 작성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변주와 왈츠'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내한 리사이틀의 해설도 직접 썼다. 그는 "길을 걷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앉아서 에세이든 시든 적는 것처럼, 무언가 창조한다는 건 여전히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허프 리사이틀: 6월 1일 오후 6시 LG아트센터.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