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돈 되는 작품이라니… 멋대로 공연하지 마시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05.07 23:06 | 수정 : 2008.05.08 06:41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 '애니' 등
저작권자 잇단 불허통보로 공연 난항

"이번 공연은 불허합니다!"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애니》 제작진이 최근 저작권자로부터 받은 날벼락 통보다. 삼류밴드의 고단한 여정을 담은 임순례 감독의 영화를 바탕으로 2004년 초연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원작보다 뮤지컬이 더 대중적 사랑을 받았고, 미국에선 거의 공연되지 않는 원작을 사들여 2006년 국내 초연한 《애니》 역시 배우들에게 '만원사례(滿員謝禮)'를 돌릴 정도로 흥행했다.


개명(改名)해 공연

오는 6월 7~1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신(新)행진! 와이키키》가 공연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올렸던 제작사 서울뮤지컬컴퍼니가 영화 저작권을 가진 MK픽처스로부터 지난 3월 '공연 불허'를 통보 받자 제목을 바꾼 것이다. 내용도 '수술대'에 올랐다. 그룹의 리더 성우는 은성, 베이시스트 정석은 철호, 드러머 강수는 영수가 됐다. 그룹 사운드 〈충고 보이스〉는 〈태풍〉으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와이키키 보이스〉로 이름을 바꿨다. 또 영화의 흔적이 강했던 2막의 이야기가 대폭 수정됐다.

저작권 문제로 제목과 내용을 바꾼 뮤지컬 《신 행 진 ! 와 이 키 키》./서울뮤지컬컴퍼니 제공
MK픽처스는 "처음엔 좋은 취지라고 판단해 무상으로 공연을 허락했는데, 그 후 우리와 상의 없이 재공연을 해 신뢰가 깨졌다"며 "장차 직접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제작할 뜻도 있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뮤지컬컴퍼니는 "원작자에 대한 예우가 부족했다는 실수는 인정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여놓은 데는 뮤지컬의 공이 컸다"며 "사장시킬 수 없어 영화의 흔적을 지우고 공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송골매의 〈세상만사〉로 열려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로 닫히는 《신행진! 와이키키》가 2006년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연출가 이원종은 "이미 영화로부터 벗어난 1막은 2006년 공연과 90% 같고, 2막은 우울한 리얼리티 대신 꿈과 역동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꿨다"면서도 "참담한 기분"이라고 했다.
2년 연속 흥행했지만 올해 공연이 취소된 뮤지컬《애니》./세종문화회관 제공

시장성 확인되자 No!

1977년 토니상 수상작 《애니》는 미국 시장에서는 '유통기한'이 지난 뮤지컬이었다. 극본과 음악을 수입한 서울시뮤지컬단은 매년 재계약을 하며 연말 세종문화회관에서 이 가족 뮤지컬을 공연해 히트시켰다. 아역 배우들의 힘이 컸고 전체적인 품질도 좋아 지난해 한국뮤지컬대상 베스트외국어뮤지컬상까지 받았다. 그러자 로열티를 받아온 미국의 저작권 관련 에이전시인 MTI측이 "우리가 투어팀을 만들어 아시아 공연을 갈 계획"이라며 '공연 불허'를 통보해 왔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유희성 예술감독은 "황금 시즌인 12월 말 공연하기로 공지된 상황이라 당혹스러웠다"면서 "다음 라이선스(공연권)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어 항의는 단념했고, 급히 다른 작품을 물색 중"이라고 했다. 조용신 공연칼럼니스트는 "시장성 있는 곳으로 투어 공연을 가는 것은 당연한 자본의 논리"라면서도 "공연장과 시점 등 변수가 많아 《애니》 투어 공연이 라이선스 공연만큼 호응을 얻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두 사건은 국내에도 '리메이크(remake) 시장'이 엄존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영국은 미국에서 원작을 사들인 《마이 페어 레이디》 《오클라호마》를 재창조해 미국에 되팔았고, 한국의 오디뮤지컬컴퍼니도 미국에서 극본과 음악만 사온 《올슉업》을 일본에 수출하는 등 라이선스 시장에서도 새 부가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원종원 뮤지컬평론가는 "저작권 협상에서 재창조도 인정받는 조항이 필요하고, 리메이크 관련 저작권이 세분화돼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