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난무하는 폭력… 그러나 '떠남'은 아름다웠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05.07 23:08 | 수정 : 2008.05.08 06:42

연극 '포트'

자동차는 선착장에 멈춰 있다. 가출을 결심한 엄마가 딸 레이첼(장영남)과 아들 빌리(김주완)에게 "그만 자!"라고 윽박지를 때 멀리서 뱃고동과 물살 소리가 들린다. 지금 그녀에겐 이 피붙이들도 짐이다. 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아빠(김영필)는 술에 절어 있고 폭력적이다. 레이첼을 때리고 빌리의 도둑질을 허락한다. 성장한 레이첼은 눈먼 외할머니에게 집세를 타내려다 거절 당하자 초콜릿을 우겨 넣어 그녀의 입까지 틀어막는다.

연극 《포트》(연출 박근형) 속 인물들은 온전하지 않다. 남자들은 넘치게 폭력적이거나 애정 결핍이다. 일그러져 있기는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불안하게 흐르는 이 번역극(작가 사이먼 스티븐스)의 물살엔 익숙한 무엇이 있다. 차가운 폭력과 뜨거운 가족애를 맞붙인다는 점에서 박근형과 극단 골목길의 정서와 통한다. 레이첼의 남편이 의처증으로 그녀에게 향수를 마구 뿌리는 장면에서, 남편은 으스러지게 그녀를 껴안았다가 목을 조른다. 그 순간 새천년을 알리는 폭죽 소리가 들려온다.

눈감고 누군가 떠올려야 할 때 보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가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 연극에서 레이첼은 "누군가 떠올릴 때, 아빠는 늘 술집에 있어. 집이 아니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녀는 아빠만큼 폭력적인 남자와 결혼했다 결별한다. 그리고 레이첼이 사랑한 대니(이승준)는 "같이 도망가자"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다.
《포트》의 레이첼(장영남)과 빌리(김주완)./극단 골목길 제공

무대는 가난하고 생략이 많은 이야기는 가끔 덜컹거렸다. '떠남'에 대해 말하는 이 성장 드라마는 마지막 선착장 장면에서 가장 빛났다. 빌리가 "난 누나가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 당장! 엄마처럼. 어서 떠나!"라고 외친다. 자동차 경적을 빵빵 울린다. 연극이 끝나고 극장을 빠져나올 때 그 클랙슨 소리가 한동안 귓바퀴에 맴돌았다.

▶18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 (02)6012-2845